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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성 애국·애족/손태규 정치부 차장(앞과 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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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성 애국·애족/손태규 정치부 차장(앞과 뒤)

입력
1998.02.2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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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 한국인은 자신을 애국·애족적이라 말하고 싶어한다. 나라를 위하고 동포를 돕는 일이라면 들판의 불길 처럼 무섭게 타오르는 국민적 에너지에 강한 긍지와 자부를 느낀다. 그러나 우리의 애국·애족은 자기기만이거나 위선일 경우도 허다하다. 보편적 가치와 윤리는 스스럼없이 무시하거나 아예 생각 조차 하지 않으면서 애국·애족이란 이름이 붙은 자선과 희생에는 기꺼이 몸을 던진다. 어찌보면 연극적 기질이 풍부한 민족이라 할 수 있다.

 「성덕 바우만」이란 미국 입양아가 온 국민의 가슴을 절절하게 만든 96년으로 돌아가 보자. 그때 우리나라는 골수기증 운동이 절정을 이루었다. 이 땅에 태어나 버려졌던 네살배기 어린이가 미국 공사 생도란 헌헌장부로 자라났으나 곧 목숨을 잃을 백혈병이라니.

 미소를 잃지 않는 애처로운 그의 투병 모습은 온정 많은 한국인을 감동시키기에 충분했다. 전 국민이 성덕 바우만 살리기에 나섰다.

 한달에 한 두명 찾기 힘든 골수기증희망자가 줄을 이었다. 바람에 흔들리는 촛불과 같은 병세에 따라 수 많은 사람들이 울고 웃었다. 지극한 동포애였다.

 마침내 한 청년의 골수 제공으로 이식 수술이 성공하고 성덕이 생명을 되찾자 우리들은 스스로 얼마나 대견해 했던가. 메말랐던 대지에 한 줄기 소낙비와 같은 인정을 우리들이 여전히 가지고 있음에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하지만 그때 우리는 누구도 매달 2,000여명의 버려진 어린이들이, 받아주는 한국 가정이 없어 먼 나라로 입양을 떠난다는 현실을 의식하지 않았다. 그동안 무려 13만여명의 고아가 모국의 냉대로 해외입양될 수 밖에 없었다는 사실에 눈을 돌리지 않았다. 그 수 많은 아이들이 때로는 조국을 미워하며, 때로는 조국의 온기에 목 말라하면서 조국을 그리워하고 있음을 깨닫지 않았다.

 성덕 바우만 살리기에 나서는 열정과 인정이라면 왜 우리들은 그 아이들을 진작 우리 가슴에 품지 않았던가. 참으로 허망한 이중성이다. 그 애족은 자기기만이요 위선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요즘 「금 모으기」 열풍이 전국을 휩쓸고 있다. 경제난국 극복을 위한 최대의 애국이 금 모으기 동참으로 집약되는 분위기이다.

 그러나 집안의 금을 내놓는 것으로 애국을 할 만큼 했다고 믿어서는 안된다. 합리적 자본주의와는 전혀 어긋나는 생활태도와 경제의식·관행을 고치지 않으면서, 전시성 애국행위를 위기타개의 저력으로 착각해서는 안된다. 위선과 자기기만을 자각하는 것은 애국·애족을 자랑하는 것 보다 수치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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