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달 그림자/박찬식 논설위원(메아리)
알림

달 그림자/박찬식 논설위원(메아리)

입력
1998.02.20 00:00
0 0

 미국이 이라크를 패주기로 결정한다면 초전은 이라크 방공포대와 미 공군 스텔스폭격기의 대결로 결판이 날 것이라고 군사전략가들은 보고 있다. 91년 걸프전의 교훈을 살려 이라크는 지난 7년동안 대공포 보강에 온 정성을 기울였다. 고성능 레이더와 정교한 미사일을 러시아와 유럽 선진국에서 돈을 아끼지 않고 사들였다. 지금 이라크 방공망은 세계최고 수준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것을 어떻게 초전에 제압하느냐가 미군의 숙제인 셈이다.

 클린턴은 베트남전쟁 때 반전운동에 참여해 징병을 기피한 경력이 있다. 그가 대통령이 된 직후 멋모르고 아프리카 소말리아분쟁에 개입했다가 다수의 미군 전사자를 냈다. 그때 미국 여론은 클린턴에게 분노했다. 소말리아가 대체 미국에 무엇이기에 미군병사의 아까운 생명을 그런데다 갖다 버렸느냐. 징병기피자가 대통령이 되니까 그꼴이 된 게 아니냐는 비난이 난무했다.

 혼뜨검이 난 클린턴은 그 후 미군병사의 해외파병을 아주 조심해 왔다. 그는 북한 핵위기를 외교력으로 해결한 일과 보스니아분쟁을 큰 희생 없이 수습한 것을 최대의 업적으로 알고 있다. 대만위기 때 항공모함 파견 만으로 총 한 방 안 쏘고 중국을 견제하는데 성공한 일은 그의 큰 자랑이다.

 이번에도 이라크가 말만 잘 들어 주면 어찌어찌 군사력 동원 없이 일을 수습해 보자는 것이 그의 희망이겠지만 일이 그렇게 쉽게 풀릴지는 의문이다. 러시아와 주변 아랍국들의 반미감정이 예전과 달라서 이라크의 힘이 돼주고 있기 때문이다.

 바로 그런 반미 무드가 거꾸로 미국의 무력응징을 유인하고 있는지 모른다. 반대 여론에 밀려 이제와서 명분 없이 물러서는 것은 세계 최강국 미국의 체면과 위엄이 말씀이 아니게 되는 일인 것이다.

 하지만 미국이 공격을 시작한다 하더라도 지난번 걸프전 때처럼 대규모 지상군이 동원돼 다수의 전사자가 발생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는 게 클린턴의 다짐이다. 이번 전투는 그래서 항공모함에 실린 전폭기와 스텔스 폭격기가 대거 동원돼 이라크 전역을 융단폭격하는 제한전 방식으로 전략이 짜여 있다.

 응징목표는 60여 곳이나 되는 후세인의 대통령궁과 전국에 산재한 생·화학무기 시설이다. 이들은 죄다 땅밑 콘크리트 벙커에 숨겨 있는데다 주변에는 고성능 방공포대가 공습에 대비하고 있다.

 이때문에 미 공군은 「벙커 버스터(Bunker Buster)」라는 별명이 붙은 신형 폭탄을 만들었다. 레이저 유도장치가 붙어 있어서 지하 수십m 콘크리트 구조물 속에 감추어져 있는 목표물을 찾아내 폭파할 수 있다. 폭파 때 방출될 생·화학물질은 그자리에서 함께 타 없어진다. 폭파와 동시에 폭탄에서 30초동안 초고열의 화염이 방사되도록 고안돼 있기 때문이다. 

 「GBU­28」이라는 이름의 이 고성능 폭탄은 한개 무게가 2㎏이 넘어서 경량급의 해군 전폭기로는 안되고 공군 F­15E 전폭기와 B­2 스텔스 폭격기가 공습의 주력을 맡게 된다. 그러나 목표물 주변에는 위력적인 이라크 방공포대가 버티고 있다. 대공미사일에 맞아 조종사가 무더기로 전사하는 사태를 막자면 먼저 이 방공망을 때려부숴야 한다.

 이라크 방공포대는 또 세계 최첨단의 고성능 레이더가 지키고 있으므로 포대를 때리자면 이 「전자 눈」을 속이거나 피해 갈 수 밖에 없다. 그 임무를 해내기 위해 거금을 쏟아부어 만들어 낸 것이 바로 F­117 스텔스전폭기다.

 이 F­117이나 B­2 같은 스텔스기의 약점은 그 거대한 동체에 있다. 레이더를 피하자면 낮게 날아야 하는데 그 큰 몸집 때문에 금방 사람 눈에 띈다. 미 공군은 그래서 작전을 밤에 개시하기로 했지만 달빛이 밝은 날은 그 그림자 만으로 스텔스기의 출현을 알 수 있다는 사실이 판명됐다.

 그럼 이라크에 달이 안 뜨는 때는 언젠가. 오늘 20일부터 1주일간이 그 기간이다. 달 그림자로 들킬 염려 없이 마음 놓고 때려부술 수 있는 칠흑의 어둠이 계속되는 기간이다. 클린턴은 정말 반대여론을 무릅쓰고 개전을 결정할 것인가. 전쟁을 막기 위한 마지막 외교노력이 숨가쁘게 전개되고 있다.

 어쨌거나 수만명의 무고한 인명이 희생될 전쟁의 D데이 결정변수가 시인의 노래에나 나올 달 그림자라니….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