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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청 대안학교 교사 장영란씨/농촌에 산다고 농사만 짓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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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청 대안학교 교사 장영란씨/농촌에 산다고 농사만 짓나요

입력
1998.02.1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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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청 대안학교 교사 장영란씨­“더불어 사는 농촌아이들 교육의 기쁨 느껴요”/전통된장 만들어파는 이성운씨­“산골콩맛 반해 만든 된장 생활방편 됐어요”/무역업하는 이대철·박랑 부부­“팩스·컴퓨터 있는데 꼭 도시여야 하나요” 농촌으로 삶의 터전을 옮긴다는 것이 꼭 농민의 삶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대안교육을 찾아서, 전통음식의 복원을 위해, 또 보다 인간적인 삶을 향해 자연으로 돌아가고자 농촌을 찾는 사람들도 속속 늘고있다.

 서울에서 여성민우회, YWCA 등 사회단체활동을 하던 장영란(40)씨는 대안교육의 꿈을 안고 96년 6월 가족과 함께 경남 산청군 신안면 외송리로 내려왔다. 장씨의 근무지는 경남지역의 첫 중고등과정 대안학교인 간디학교(교장 양희규). 시간당 10만원의 강사료를 받는 고급인력이었던 그가 주말도 없이 일해야하는 이 학교에서 받는 월급은 고작 30만∼40만원. 그러나 「자기 삶의 주인되는 교육을 시킨다는 자부심」이 농촌을 지키게 하고있다.

 장씨는 『미친짓이라는 소리도 많이 들었다. 그러나 수동적으로 지식만 습득하는 도시아이들보다 사람들과 더불어 살 줄 아는 농촌아이들이 훨씬 행복하다는 것을 새삼 깨닫는다. 경제적으로야 도시에서보다 크게 쪼들리지만 기본적인 먹거리는 텃밭가꾸기로 해결할 수 있고 무엇보다 마음만은 너른 들판처럼 푸근하다』고 말한다.

 전통된장을 만드는 이성운(43·산가락 대표)씨는 아내와 함께 5년전 서울생활을 청산하고 전남 구례군 간전면 수평리로 귀거래를 단행했다. 국제회의 기획회사를 다니던 그로서는 인근 화엄사 스님들과의 교류를 제외하고는 이곳에 아무 연고도 없었지만 수려한 경관과 넉넉한 인심이 좋았다. 처음에는 천연염색작업을 하는 아내를 위해 식물을 재배하는 일을 했지만 곧 수평리에서 많이 나는 산골 콩맛에 매료돼 생활의 방편도 찾을 겸 된장담그기에 나섰다. 스님들한테 절식 된장담그는 방법을 배워가면서 조금씩 생산한 전통된장은 입소문을 통해 퍼져나갔고 현재는 연매출 5억원정도의 중견 전통된장생산업체로 자랐다.

 이씨는 『어렸을 때는 그저 부모가 이끄는대로 살았지만 나이가 들수록 스스로 선택한 곳에서 살고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남도 특유의 멋에 취해선지 16가구가 사는 초졸한 산골마을에 살면서도 일년 열두달 적적한지를 모르겠다』고 말한다.

 농촌에 살지만 각종 정보기기를 이용해 도시생활 못지않은 사회활동을 해내는 사람도 있다. 무역업을 하는 이대철(52·하늘말농장대표) 박랑(53)씨 부부는 벌써 17년째 경기도 용인시 구성면 마북리에서 살고있다. 도시의 매연과 혼잡함, 철저한 개인주의에 넌더리를 내고 좀 더 나은 삶의 질을 찾아 단행한 농촌행이었다.

 그러나 이씨는 농촌에 산다고해서 사회활동의 제약을 받지않는다. 이사하면서 가장 먼저 집에 들여놓은 것이 컴퓨터와 전화기, 팩시밀리 등 각종 문명의 이기들. 수직기를 수입, 판매하는 그는 외국 생산회사들과의 급한 연락을 주고받는데 이 기기들을 십분활용하고 있다. 또 부인 박씨는 5년전부터는 주변에서 쉽게 보는 들꽃을 말려 붙인 카드제조사업으로 새로운 사회활동에 나서기도 했다.

 이씨부부는 『농촌에 살면서 생각과 행동이 자유로워짐을 느낀다. 도시생활에 집착했다면 땀 흘리는 일의 즐거움을 찾기 힘들었을 것』이라고 말한다.<이성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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