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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음사슬 기업숨통 조인다/상거래 결제의 ‘필요악’ 어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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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음사슬 기업숨통 조인다/상거래 결제의 ‘필요악’ 어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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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8.02.1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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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기 6개월은 예사,길면 2년/은행 할인율도 20% 넘게 치솟아/게다가 복마전처럼 얽혀서 한곳에서 부도라도 나면 줄초상 피할 길이 없다상거래 결제의 윤활유라던 어음. 그러나 IMF체제에서 복마전처럼 뒤얽힌 「어음 사슬」은 기업들을 부도의 구렁텅이로 내모는 괴물로 변해 버렸다. 대기업, 중소기업, 영세업체를 가리지 않는다. 차례로 집어삼킨다. 거래처의 부도로 인한 연쇄부도의 공포, 6개월 이상 늘어지는 어음결제 기한, 대기업의 어음횡포, 금융기관의 어음할인 기피, 고리대에 가까운 할인율. 중소기업들은 「울고 싶은」 심정이다. 무분별하고 불합리한 어음거래가 경제의 신용기반을 무너뜨리고 있는 것이다.

국내 3위의 방열기 공급업체로 지난해 7월 중소기업진흥공단 우수업체로 선정된 한국금속열기. 국내최고의 방열기업체를 꿈꾸던 안만영(42) 사장의 계획은 거래업체의 연이은 어음부도로 물거품이 돼 버렸다. 지난해말 부도난 거래업체의 어음 3,000만원을 막지 못해 흑자부도가 난 것이다.

 지난해 초대형 건설업체들의 잇따른 부도로 안씨가 받은 피해는 막대했다. 한해 동안 막은 타업체 부도어음만 5억7,000만원. 부도만은 피하려고 6, 7부 이자라도 주고 돈을 구하려 했지만 은행이나 종금사는 어음 할인을 외면했다.사채시장도 꽁꽁 얼어 붙었다. 받을 어음이 2억원이나 됐지만 할인이 안되니 휴지조각이나 다름없었다.

 어음 발행에 신중을 기했고 어음을 받을 때는 발행인과 배서인들의 신용도까지 확인했지만 별 수 없었다. 은행의 할인금리가 엄청날 뿐 아니라 할인시 담보나 보증인까지 요구했기 때문에 금리 부담은 이중 삼중이 됐다.

 『내 집은 물론이고 형과 누이의 집까지 몽땅 날렸어요. 만기어음이 계속 돌아와 빚이 눈덩이처럼 불어났죠. 힘겹게 공장을 돌리고 있지만 언제 쇠고랑을 찰 지 모릅니다. 일찌감치 KS와 Q마크를 따고 파주 협동화공장 입주도 예정돼 있었지만 어음부도로 이젠 모든 꿈이 날아가 버렸어요』

 전자부품 생산업체인 S전자. 지난해 해태전자에서 받은 어음 5억여원이 부도나 문을 닫아야 할 처지다. 12월과 1월에 만기도래한 3억원과 2억3,000만원의 어음을 모두 떼였고 외상미수금도 4억여원에 이른다. 100% 어음거래를 한 데다 납품한 물품도 모두 차압돼 피해를 고스란히 뒤집어 썼다.

 사장 김모씨의 말. 『어음 만기가 계속 늘어져 요즘은 6개월짜리 어음을 끊어줘요. 그래도 납품을 하려면 어쩔 수 없이 받아야죠. 그 기간동안 이자손실과 부도위험은 중소기업이 모두 떠안는 겁니다』

 S전자가 하청업체에 발행한 어음은 7억원 정도. 해태전자에 물린 9억원을 받지 못하면 함께 부도가 날 판이다.

 『막다 막다 정 안되면 부도를 내고 도망갈 수 밖에 없어요. 15개가 넘는 하청업체들도 우리 눈치만 보고 있는데 벌써 몇개 업체는 어음이 돌지 않아 폐업한 상태예요. 대기업이 부도나니 중소기업들도 연쇄적으로 부도가 날 수 밖에 없어요』

 기아자동차의 1차 부품업체에 인조피혁을 납품하는 S화학. 기아사태로 1차업체들이 무더기로 부도나면서 어음 5억여원을 고스란히 떼일 처지다. 지난해 11월 거래처인 D공업의 부도로 어음 2억원이 물린 데 이어 주거래선이던 H물산마저 화의신청을 내 1억7,000만원이 추가로 묶였다.

 이 회사의 조모(56)사장. 『어음은 대기업과 1차, 2차 하청업체로 먹이사슬처럼 연결돼 있어요. 기아는 1차업체인 D사에 현금이나 1, 2개월짜리 어음을 끊어 주고 D사는 우리에게 4개월짜리 어음을 주죠. 그것도 납품한 한 달 뒤에 주니 실제로는 5개월후에나 받는 셈이죠. 반대로 원료를 공급해 주는 대기업들은 현금이나 단기어음이 아니면 받질 않아요. 어음을 받을 때 담보를 요구하는 경우도 많아요. 대기업들은 앉아서 기간 차익을 올리는 거지요. 완전히 대기업의 횡포예요』

 원자재는 현금으로 사고 납품때는 4, 5개월짜리 어음을 받으니 S화학같은 중소기업은 죽어날 지경이다. 대기업이 부도를 내면 중소기업은 속절없이 어음부담을 떠안을 수 밖에 없다. 『떼인 어음대금을 받을 가능성은 거의 없어요. 3년거치 5년분할 상환을 한다는데 지금 당장 쓰러질 판에 그게 다 무슨 소용입니까. 한마디로 어음은 휴지조각이 돼 버린 거예요. 아마 부도난 어음을 다 모으면 한 서랍은 될 겁니다』

 은행의 어음할인도 하늘의 별따기다. 할인율이 지난해 11월 10.75%에서 올1월 17.5%로 치솟았다. 조사장은 할인을 받는 것만도 다행이라고 자신을 달랜다. 『은행에서 지나친 담보를 요구하는 경우도 많아요. 진성어음은 부도율이 10% 이하인데도 정상적인 담보의 갑절을 요구하지요. 금융기관과의 오랜 신용도 전혀 소용이 없어요』

 양모 임가공업체인 D사 송모사장은 『어음은 경제를 망치는 독소』라고 극언했다. D사는 최근 (주)나산에 납품을 하던 거래업체가 나산과 함께 쓰러지면서 1억원의 어음이 물렸다. 은행에 할인하거나 배서해서 돌린 어음을 대신 막느라 갖은 애를 쓰고 있지만 부도어음의 여파에서 벗어나기 힘든 상태다.

 어음부도가 속출하면서 D사는 거래량을 예전의 절반으로 줄였다. 기껏 납품해서 받은 어음이 부도날 바에야 아예 거래 자체를 안하는 것이 속편하다는 생각이다. 송씨는 『상대가 언제 부도날 지 모르는데 어떻게 믿고 거래를 하겠느냐』고 반문했다. 현찰을 준다면야 언제라도 좋지만 현찰은 「먹고 죽으려 해도 없다」는 게 거래처의 대답이다. 모든 게 어음거래다. 만기도 점점 늘어나 6개월은 보통이고 일부에서는 1년에서 심지어 2년짜리도 나돌고 있다.

 『어음이 아예 없어졌으면 속이 시원하겠어요. 현찰능력이 있는 사람만 거래하든지 은행이 어음발행에 대해 보증을 해줘야 해요. 은행이 담보를 잡고 신용한도 내에서 어음을 발행하게 해야 어음의 신뢰도가 올라갈 겁니다. 어음을 믿질 못하니 상거래를 할 수가 없어요. 지금 우리회사가 겪는 고통은 100% 어음 때문입니다. 어음이 외려 경제순환에 악영향을 미치고 있는 거지요』<김경화·배성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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