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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인들의 공부법/선인들은 어떻게 공부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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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인들의 공부법/선인들은 어떻게 공부했나

입력
1998.02.1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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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자·이이·이황·박지원·정약용 등/선인들의 글을 통해/독서·몸가짐 등 소개 『사람이 세상에 태어나 공부를 하지 않으면 사람다운 사람이 될 수 없다. 공부란 특별하거나 별다른 것이 아니다. 다만 어버이가 되어서는 자식에게 인자하고 자식이 되어서는 부모에게 효도하며… 형제간에 우애가 있으며 젊은이는 어른을 공경하고 친구간에 믿음있게 하는 것이다. 이것은 모두 날마다 생활하는 사이에 경우에 따라 그 마땅함을 얻어야 하는 것이지 현묘한 데 마음을 쏟아 기이한 효과를 바랄 게 아니다』(「격몽요결」중에서).

 여기서 율곡 이이가 말한 「공부」는 원문에 「학문」으로 돼 있다. 지금은 학문이라 하면 박사학위쯤 딸 사람이 익히는 고도의 전문지식으로 생각하지만 옛 사람들은 그렇지 않았다. 말 그대로 배우고 묻는 것, 누구나 끊임없이 해나가면서 인격을 향상시키고 세상을 밝히며 인간과 우주의 이치를 깨달아가는 과정이라고 보았다. 현대식으로 말하면 윤리적 주체와 지식이 하나였다는 얘기다.

 서울대 국문과 박희병 교수가 편역한 「선인들의 공부법」(창작과비평사 발행, 8,500원)은 공자 주자 이황 이익 박지원 정약용  최한기 등 큰 공부를 이뤄낸 선인들의 글을 통해 사물의 이치를 밝히는 법, 독서와 글쓰기, 일상의 몸가짐, 세상 사는 자세 등 공부의 여러 측면을 소개한다.

 데카르트의 방법론적 회의와 유사한 담헌 홍대용의 학문론을 보자. 『큰 의심이 없는 자는 큰 깨달음이 없다. 의심을 품고 있으면서도 얼버무리며 미봉하는 것보다는 자세히 물어 판단을 구하는 것이 낫다』(152쪽).

 역대 학문경향의 변천과정을 논한 추사 김정희의 글은 토마스 쿤의 「과학혁명의 구조」를 연상시킨다. 『세상의 학술이란 수백년이 지나면 반드시 변하게 돼 있다. 학술이 변화할 때가 되면 반드시 한두 사람이 나타나 그 단초를 여는데 이때 수백수천 사람이 왁자지껄 떠들며 그를 공격한다. 학술의 변화가 고착되면 반드시 한두 사람이 나타나 그간의 성과를 집대성하는데 그러면 수백수천 사람이 일시에 추종한다. 공격하는 것은 온 세상이 새로운 학술의 이상함을 보았기 때문인데 이때는 아직 새 학술의 폐단이 드러나지 않는다. 일시에 추종하는 것은 온 세상이 그 학술이 이상하지 않다고 보았기 때문인데 이즈음 그 학술은 폐단을 드러내기 시작한다』(199쪽). 공부는 젊은 시절을 옥죄는 족쇄일 뿐이라고 느끼는 보통사람에게나, 객관타당한 보편이론 수립을 목적으로 하는 서양의 과학방법론에서 뭔가 답답함을 느끼는 학자들에게 선인들의 훈수는 안목을 크게 열어 줄 것이다.<이광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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