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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듀,YS/김병주 서강대 교수·경제학(화요세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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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듀,YS/김병주 서강대 교수·경제학(화요세평)

입력
1998.02.1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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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혁 선의였다해도 무리하면 실패를…/‘반사 교육적’에 기여 한국인은 불운했다” 좋은 일은 한이 없었으면, 좋은 자리에서는 머물렀으면 바라는 마음으로 저울질하면 세상일이란 야속하기만 하다. 그러나 세상만사를 고르게 만드는 위대한 평등장치는 시간이다. 천하를 주름잡던 대통령도 5년 단임이란 시간의 명령에 따라 다시 평범한 국민의 한 사람으로 돌아가야 한다.

 돌이켜 보면 어떤 시작이었던가. 대한민국 초유의 「문민」정부라 했다. 군사정변 이전 문민정부의 역사적 존재에 눈감은 점은 신정부의 흥분 탓이었겠다. 여론조사마다 90%이상 치솟던 지지도가 당시의 열기였다.

 그런데 퇴임 1주전 바닥에 가라앉은 인기도는 단순히 급등한 것은 급락하게 마련이라는 대중인기의 중력법칙 때문인가. 처음에는 개혁에 찬사를 보내던 많은 사람들이 스스로 개혁대상이 되자 비판세력으로 돌아서 국정운영이 어려웠음을 대통령은 최근 지적했다 한다. 일견 일리있는 말이다. 그러나 그간 국정운영의 애로를 국민탓으로만 돌리지 않고 자기 주변의 잘잘못을 올바로 가려 상당한 책임이 자신에게도 있었음을 통감해야 지도자다운 체면을 유지할 수 있다.

 취임사를 비롯해 대통령의 초기 발언에 다수 국민을 열광하게 하는 수사학적 표현이 많았다. 그러나 깊이 천착해 준비한 정치 경제의 철학적 바탕없이 표현의 기교에 기운 대목이 없지 않았다. 대통령의 초기 발언중 우리는 일찍이 국정의 혼란을 내다볼 수 있었던 두가지 대목이 있었다. 그것은 「어떤 우방보다 동족」이 우선하고 「가진 자에게 고통」을 주겠다는 대목이었다.

 전자는 한국의 주어진 지정학적 여건하에서 그의 안보관에 의구심을 갖게 했다. 「같은 핏줄」을 가진 사람끼리 만나면 통한다는 대학운동권 구호와 정서를 같이하는 자세로 보였다. 그후 경수로 건설, 4자회담 제안등으로 이어지면서 때로는 대우방관계를 경색시키는 보수성향을 보이기도 했다. 같은 핏줄을 강조한 관점은 또한 배타적 국수주의 함정에 빠질 우려를 자아냈다. 그후 「세계중심국가」로의 도약을 목표로 외국어로 번역하기도 어려운 「세계화」운동을 전개하였으나 아태경제협력체(APEC) 회의중에서 우뚝 선 대통령의 모습이 기억될 뿐이다. 96년말 선진국 대열에 오르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서둘러 가입한지 일년만에 국제통화기금(IMF) 금융지원을 받게된 「세계화」의 아이러니가 없었다면 얼마나 떳떳할까.

 시장경제란 무엇인가. 수요와 공급 두 측면에서 사람이 자유로이 거래하는 시장이 있어야 한다. 거래의 대상인 재화와 용역의 소유권을 가진 자들 사이에서 시장경제가 작동한다. 사회주의 계획경제하에서 시장이 시들한 이유는 사유재산이 크게 제한되어 있기 때문이다. 가진 자에게 고통을 주다니.

 물론 우리는 시장경제가 사회정의와 어울리려면 소득분배의 지나친 불평등을 누진과세, 증여세등의 조세수단, 사회복지제도의 확충등으로 완화해야 한다. 경제주체들을 움직이는 기본 동기는 이기심과 두려움으로 압축된다. 국민의 경제활동의 왕성함은 남보다 잘 살고 싶은 욕심에 정비례하고, 노력의 결실을 빼앗길 우려에 반비례한다. 정당하게 얻은 노력의 열매를 누릴 수 있도록 보호받는 질서의 사회여야 자유시장경제가 꽃핀다. 과반수 이상의 국민이 스스로 중산층이라고 생각하고 사는 나라에서 가진 자에게 고통을 주겠다는 정권은 스스로 정치기반을 허문다. 금융실명제는 바람직한 제도이다. 그러나 금융자산보유자에게 지나친 두려움을 주는 방향의 제도는 부작용을 불가피하게 수반한다.

 과거 권위주의정부들의 경우도 그러했지만, 물러나는 정부의 개혁정책들이 대부분 좋은 뜻에서 기획되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실패의 무덤에 이르는 길은 좌절·왜곡된 선의로 포장되어 있다. 성공한 경제정책은 경제주체들의 기본 동기를 거스르지 않고 구슬러 활용한 정책들이다. 개혁의 뜻이 선의였다 해도 무리하면 실패한다.

 마지막으로 모든 개혁조치들이 선의로 잉태됐다 해도, 개혁추진세력들이 순수한 개혁취지에 충실하게 추진했던가 하는 의문에 이르게 된다. 대통령 본인의 순수성을 믿고 싶지만, 측근의 책임을 포함하는 경우 의문은 남는다.

 아마도 역사의 긴 흐름에서 YS의 평가는 현재보다는 다소 동정적일 것이다. 왜냐하면 반사교육적 기여가 이처럼 큰 인물은 드물 터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국민이 퇴임을 아쉬워하는 대통령을 갖고 싶다. 한국인은 이 점에서 불운했다. 다음 정부는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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