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위기의 모든 비상구는 진정한 시장경제확립으로 통하고 있다. 재벌지배구조의 해소도, 노동문제의 해결도 그 최종적인 해법은 선진자본주의적 경제구조와 노사관계를 확립하는 것에서 찾아지고 있다. 현재 IMF측의 개혁안이나 노사정의 타협안도 파행적으로 운영되고 있는 한국경제의 투명화 합리화 정상화를 요구하는 것이다. 권위주의권력에 의해 주도되어온 경제성장과정에서 지금까지 정은 사의 편에 서 있었다. 그런 점에서 정치권은 노사정 합의정신을 앞장서서 공정하게 이끌어가는 자세를 보여야 할 것이다. 일각에서 우려하고 있듯이 전교조 합법화, 공무원 직장협의회, 노조의 정치활동문제 등의 지엽적인 문제가 입법과정에서 과민한 논쟁으로 모처럼의 합의정신에 찬물을 끼얹는 일이 발생하지 않기를 바란다. 그리고 지금의 총체적 위기의 한 책임당사자가 바로 정치권임을 분명히 인식해야 할 것이다.
입춘이 지난 겨울의 마지막 길목에서도 봄은 기다려지지 않는다. 200만 이상으로 추정되는 대량실직자, 치솟는 물가고로 이제 이 위기는 서서히 우리의 일상생활로 파고 들 것이다. 어떤 이들은 고통을 이기지 못하는 그들이 거리로 뛰쳐나와 엄청난 혼란이 야기되어 국가안보가 위태로워지지 않을까도 우려하고 있다. 그러한 극단의 비극적 사태를 피하기 위해서도 진정한 시장경제를 바탕으로 참여민주주의가 실현되어야 할 것이다.
참여정치란 바로 노동시장의 합리화가 추구되는 것이다. 즉 사용자와 노동자가 자유롭게 자신의 이해를 국가정책에 반영할 수 있는 통로가 열려있는 것을 의미한다.
진정한 재벌개혁이 자유경쟁의 시장체제를 확립함으로써 성공할 수 있듯이 참여민주주의도 노동자의 자유로운 단결권, 정치참여, 정치권력의 획득을 통해서만 궁극적으로 가능하게 될 것이다.
이제 우리사회가 국제적 수준의 자본주의적 관계로 들어간다. 그 결과 선진자본주의의 노사관계는 물론 그러한 수준의 문화를 수용하는데 따른 득실이 있다. 파산된 한국경제의 현실이 「대타협」의 명제를 제시했다면 이의 실체적 내용은 외국자본의 요구에 부응하는 국내노동과 자본간의 합의도출로 요약된다.
논리적으로 보면 우리나라의 노동자들은 외국자본과 그 압력아래 놓인 국내자본 및 국가권력을 상대로 실현이 불확실한 장기어음을 손에 쥔 채 자신의 운명을 내맡긴 것에 비유될 수 있다. 과연 우월한 힘을 쥐고있는 국내자본과 국가권력이 노동자의 희생을 전제로한 대타협의 결과 선진자본주의의 혜택을 동시에 노동자에게 가져다 줄 수 있을 것인가.
국내자본의 역사는 권력과의 유착, 관치금융과 각종 특혜를 통해 재벌과 대기업으로 성장한 역사이다. 이처럼 인위적으로 권력에 의해 출현한 대규모적인 기업이 낮은 생산비, 유통에서의 이점을 가지고 급속도로 수출경제의 성장을 주도했고 「한강의 기적」「한국모델」로 이상화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 특유의 동양적 기업문화가 지닌 관행적 구조적 기생성은 올바로 직시되지 못했다.
참여민주주의의 확립은 자본주의 틀내에서 노동자의 권익을 옹호하고 노동자의 정치세력화를 의미하는 민주사회의 내용을 실현하는 것이다.
정치권과 관료, 재벌의 개혁은 말할 것도 없고 언론 등 사회전반에 걸친 선진화가 요구된다. 노동자의 정치참여, 교원노조 등 노동자들이 얻어낸 권리들이란 기껏해야 1900년이래 영국을 비롯한 서구의 자본주의사회에서 이미 오랫동안 인정되어온 것들에 불과하다. 그것을 거부하겠다는 낡은 발상은 대타협이 결국 노동자들에게 아무런 대가도 없이 못난 국내자본의 희생물로 끝나기를 바라는 것과 같다. 진정한 사회적 위기는 거기에 배태되어 있다.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