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유가 담긴 사진’ 새 장열어/앗제,사진적 시각 정립/잔더는 ‘폭로’에 충실/미 작가들 빈민 삶 생생히/프랭크·브레송서 활짝 「다큐멘터리는 다양한 성격의 연구를 위해 사용될 수 있어야 한다. 사진적 아름다움은 2차적인 것이며 그 상은 매우 뚜렷하고, 세부가 풍부하고, 사진이 가장 덜 훼손되도록 조심스럽게 인화하는 것으로 족한 이미지이다」 1910년 브뤼셀에서 열린 제5차 국제사진대회에서는 다큐멘터리사진을 이렇게 정의했다.
한 마디로 그냥 정확히 찍으면 된다는 말이었다. 물론 다큐멘터리(이하 다큐)사진은 현실을 조작하지 않고 충실히 촬영해 전달한다는 측면에서 보도사진과 출발이 같지만 지난 100여년의 발전과정은 두 장르를 분리하고 있다.
다큐사진의 역사는 「무엇을 위한 기록자」에서 「예술로서의 순간기록자」라는 좀 더 세련된 명성을 얻기 위한 긴장의 시간이었다.
초기 다큐 사진가 외젠느 앗제(1857∼1927)의 개인사는 바로 다큐사진의 역사와 궤를 같이한다. 유랑극단 배우였던 그는 40세가 넘어 사진을 시작했다. 화가들의 자료용 사진을 찍는 것이 그의 직업이었다. 하지만 그가 담아낸 파리의 공허한 이미지는 새 세계를 열었다. 회화처럼 사진의 구도 역시 완벽히 짜여져야 한다는 당시의 사진 원칙과는 별개로 그는 그저 렌즈 안에 들어오는 파리의 풍경을 찍었다. 그의 사진은 그러나 이전 사진이 보여주지 못했던 초현실적 분위기를 전달했다. 「사진적 시각」이라는 새로운 가치체계가 성립된 것이다.
「다큐의 힘은 폭로」라는 명제에 부합되는 사진가는 독일의 아우구스 잔더(1876∼1964). 바이마르공화국의 다양한 직업 연령 계층의 사람을 찍은 「20세기 인간」에서 그는 다큐사진가들이 어떻게 상황에 충실해야 하는지를 말했다. 건조한 초상사진은 되돌릴 수 없는 시간의 기록이라는 점에서 다큐사진의 주요한 한 장으로 기록된다.
그의 맥은 미국의 사진작가들로 이어진다. 제이콥 리스(1849∼1914)는 이주민과 실업자 등 도시빈민을, 루이스 하인(1874∼1940)은 노스캐롤라이나의 방직공장과 펜실베이니아의 탄광 등의 노동자를 찍어 필설로 설명할 수 없는 비참한 생활상을 생생하게 드러냈다.
미국의 대공황기 농업안정국(FSA)에서 일했던 워커 에반스, 도로디어 랭, 아서 로드스타인 등은 다큐사진의 미학을 하나 더 포착했다. 긴박한 사건뿐 아니라 황량한 들판, 텅 빈 곳간같은 별 것 아닌 영상들을 포착하는 일 그 자체가 예술적 감흥을 전달한다는 것이다.
이런 정서는 50년대 미국의 흩어진 모래알같은 삶을 부각시킨 로버트 프랭크(1924∼)와 파리의 발라드같은 삶을 스냅사진으로 담아낸 카르티에 브레송(1908∼)의 작품에서 가장 화려하게 빛난다. 사진에 담긴 영상은 「실재」하는 것이되 그 안의 감성은 이제껏 누구도 발언하지 못했던 것이다. 다큐 사진은 진실의 기록이면서 동시에 사유의 결과물이라는 새로운 사실을 두 작가는 사진으로 말했고, 그들은 그래서 위대한 사진작가로 평가받았다.<박은주 기자>박은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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