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 환호할 겨를없이 침몰하는 한국호/난파선장의 피말리는 6일/대선직후 진정커녕 1불 2,000원 돌파/백악관 격론 “도와주되 대가얻자”/미 특사 달려와 “정리해고” 수용압박/성탄전야 “100억불 조기지원” 선물/그러나 아직도 환란은 끝나지않았다 『일주일이라도 롤오버(Rollover·만기연장)를 해주세요』『안됩니다』『많은 액수도 아닌데요』『그래도 지금은 어렵습니다』
지난해 12월16일. A 시중은행 국제부. 담당데스크 L씨는 외국은행 파트너와 한참동안 전화로 실랑이를 벌여야만 했다. 다음날 상환기일이 돌아오는 단기차입금 때문이었다. 『그럼 언제나 가능하다는 말입니까』『일단 한국의 선거가 끝난 뒤에 봅시다』
제15대 대통령선거. 전세계의 눈과 귀는 「97년 12월18일 한국」에 쏠렸다.난파선을 이끌 다음 선장은 누구인가.
김대중 후보의 승리. 그러나 「선거는 축제」란 말이 무색했다. 국제통화기금(IMF)체제는 3전4기의 대권신화를 이룬 노정객에게도, 헌정사상 첫 정권교체를 이룬 국민들에게도 단 몇시간 환호할 여유조차 허용하지 않았다.
19일. 신세기투신 영업정지. 「금융불사」신화는 계속 깨졌다. 대선후 첫날 주가는 400선을 깬 397.02. 환율은 달러당 1,660원까지 폭등했다.
의외였다. 실망이었다. 대선만 끝나면 금융위기는 진정될 것으로 기대했었는데…. 더구나 IMF이사회는 이날 한국을 위해 35억달러의 긴급융자(SRF)를 결정, 한국은행에 입금까지 끝낸 상태였다.
한은 고위관계자 L씨의 설명. 『차기대통령이 결정되면 붕괴된 정치적 리더십이 복원되고 확고한 개혁을 추진할 수 있기 때문에 상황은 나아질 것으로 믿었다. 그러나 새 정부 신뢰성이 가시적으로 확인될 때까지 외국인들은 좀더 관망하자(Wait and See)는 식이었다』
20일. 김당선자에 대한 재정경제원 첫 업무보고. 『갚아야 할 외채는 기업 해외법인분을 빼고도 최소 1,500억달러에 달합니다』 임창렬 경제부총리가 무겁게 입을 열었다. 김당선자는 망연자실했다. 『경제가 이 모양이 될 때까지 그냥 놔둔 현 정부에 놀라움을 금할 수 없다』
경악할 만도 했다. 당장 이날부터 연말까지 만기가 돌아올 외채는 110억달러. 롤오버율은 20%대로 떨어졌다. 쓸수 있는 외환보유고는 고작 48억달러. 그나마 연말엔 15억달러로 감소. 모라토리엄(대외지급유예)이 목전에 있었다.
IMF 구제금융을 신청(11월21일)한지 한달. 합의문 조인식(12월3일)도 마쳤고, 대선도 끝났다. 그런데 왜 이 모양일까. 외환위기는 해소되기는 커녕 파산국면으로 치달았을까. 국제경제연구소(IIE) 프레드 버그스텐 소장의 진단. 『가장 중요한 것은 IMF요구조건을 성실히 이행하는 것이다. 철저한 개혁의지를 재천명하고 확실한 이행을 통해 국제사회신뢰를 얻어야 한다』(16일 세계은행 주최 금융위기 토론회)
그러나 한국은 거꾸로였다. 부실종금사를 조기정리하라 해도 우물쭈물. 정확한 외채통계를 공표하라 해도 미적미적. 매사 그런 식이었다. IMF사정에 정통한 금융계 인사 L씨의 회고. 『외국인들이 「갚아야할 빚(외채)이 얼마인지도 밝히지 않는 나라에 어떻게 돈을 다시 꿔줄 수 있나」고 말할 때엔 솔직히 할 말이 없었다』
22일. 무디스는 한국의 장기신용등급을 Baa2에서 Ba1으로 떨어뜨렸다. 정크본드(Junkbond). 너무 위험해 정상 투자가들은 외면하는 투기채권. 국제금융계에서 한국신용도는 문자그대로 「쓰레기」가 되어버렸다. 이튿날(23일) 스탠더드 앤드 푸어스(S&P)도 한국의 국가신용도를 BBB―에서 B+로 하향조정했다. 역시 정크본드. 『한국의 금융지원정책(부실종금사 처리지연, 제일·서울은행 정부출자 등)은 스스로 대외신용을 위험에 빠뜨렸고 IMF정신에도 어긋난다』
모라토리엄의 그림자는 성큼성큼 다가왔다. 23일. 시중은행 롤오버율은 15.4%까지 추락했다. 만기된 외채가 1억달러라면 1,540만달러만 연장되고 나머지는 모두 상환해야 한다는 뜻. 그러나 달러가 없었다. 『외환이 바닥이다. 한달, 아니 하루하루 숨넘어갈 지경』(김당선자)
외환시장에선 하루종일 「사자」주문만 쏟아졌다. 환율은 순식간에 1,995원까지 상승. 은행창구에서 1달러를 사려면 2,000원하고도 67원을 더 내야했다. 「1달러=2,000원」시대의 개막. 곳간이 바닥난 한은 국제부는 모니터의 환율그래프가 2,000원을 향해 치솟는데도 속수무책이었다.
길은 정해져 있었다. 모라토리엄으로 가든지 IMF에 매달리든지. 외환당국 고위관계자 C씨의 설명. 『IMF와 미 재무부는 하나다. IMF 핵심라인 대부분은 재무부 출신이고, 재무부 관료 상당수는 IMF경력을 갖고 있다. IMF에 도움을 청하는 것은 곧 미국정부에 구조를 요청하는 것이다』
SOS는 이미 여러 차례 타전했었다. 10일께 정부는 미국에 『IMF패키지중 미국분담액 50억달러를 먼저 줄수 없느냐』고 요청했다. 『IMF협약이나 제대로 준수하라』 개혁능력도, 의지도 없는 「시한부 정권」을 상대하지 않겠다는 의미였다. 협상은 차기대통령이 결정될 때까지 자동공전.
미 재무부, 특히 루빈 장관은 한국에 대해 아주 완고했다. 『한국 장래에 대한 믿음없이 마구 돈을 퍼부을 수는 없다』 한국정책을 주도한 것은 루빈장관의 출신지인 「월가식 사고」였다.
하지만 분위기는 조금씩 바뀌었다. 대선 직후인 19일(미국시간 18일 하오)로 거슬러 가보자. 워싱턴 백악관 인근 제퍼슨호텔. 루빈장관과 그린스펀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의장 등 미국의 최고위급 금융당국자들의 만찬모임. 한국 금융위기 해소방안를 놓고 장시간 격론을 벌였다. 결론은 「한국을 돕는데 미국이 나서야 한다」
워싱턴 사정에 정통한 L씨의 증언. 『한국이 모라토리엄으로 가면 금융혼란이 일본, 나아가 전세계로 확산된다는 위기감이 형성됐다. 재협상론, 실업최소화 발언 등으로 물의도 있었다. 하지만 김당선자에게 기회를 줘야한다는 소리도 높았다. 그러나 미국의 입장변화는 무엇보다 국익논리에서 비롯됐다』
국무부와 국방부, 백악관 안보라인은 이미 11월말부터 한국지원을 강력히 주장했다. 『한국이 파산하면 사회불안이 커져 북한의 도발위험이 높아진다』
한국의 위기가 깊어질수록 이같은 안보론은 재무부와 월가의 자본논리를 압도해 갔다. 클린턴 대통령도 그들의 손을 들어줬다. 남은 것은 지원의 대가로 최대한 많은 것을 얻어내는 것 뿐.
22일. 여의도 국민회의당사. 특사로 파견된 립튼 미 재무차관은 입국 즉시 김당선자를 찾았다. 『차기정부는 IMF협약을 100% 준수할 것이다』
하지만 그 정도 다짐을 받으려고 태평양을 건너오지는 않았다. 새정부의 「면접관」이었다. 추가요구. 「IMF+α」에 관한 몇가지 시험문제를 던졌다. 『IMF합의에선 잘 다뤄지지 않았지만, 무엇보다 탄력적 노동시장정책이 필요하다』 모라토리엄을 막으려면, 추락한 신뢰를 회복하려면 정리해고까지도 수용할 수밖에 없었다.
미국은 흡족했다. IMF와 선진 7개국(G7)간 한국 지원논의는 빠른 속도로 진전됐다. 『당선후 10일이내에 국제금융계의 신뢰를 회복하는게 가장 중요하다』(우리측 협상파트너 유종근 전북지사)
24일 상오. 김당선자의 표정이 밝아졌다. 예고없이 기자실을 찾은 그는 조심스럽지만 자신감에 차 있었다. 『외환위기 해결의 가닥이 잡혀가고 있다』
그로부터 약 12시간 뒤인 하오 10시. 정부세종로청사. 긴급 기자회견. 임부총리는 IMF 공동발표문을 읽어 내려갔다. 『IMF와 G7은 한국의 외환위기 극복을 위해 100억달러를 조기지원키로 했다』 「탈모라토리엄」을 알리는 크리스마스 선물이었다.
98년이 밝은지도 한달반. IMF의 고통은 선택도 강요도 아닌, 잘못된 경제주체들에게 주어진 필연적 운명이다. 아직도 끝나지 않은 환란을 극복하기 위해 이젠 정부와 기업, 국민 모두 부끄러운 자화상을 읽고 또 읽어야 한다.
◎‘뉴욕협상’ 금리 적정했나/미 고금리안 독등 반발에 이미 내부폐기/상황몰랐던 한국 ‘한자리수’에만 매달려/“0.25%P는 더 낮출 수 있었던 협상” 아쉬움
「크리스마스 선물」로 끝난 것은 아니었다. 채권은행들과의 뉴욕협상이라는 또 한 고비를 넘어야 했다. 「1년미만 단기외채(약 250억달러)를 정부지급보증을 통해 중장기 외채로 전환한다」「금리는 런던은행간금리(리보)+ 2.25∼2.75%(평균 8.1%)로 한다」 지난달 21일부터 일주일간 벌어진 줄다리기가 낳은 타결안. 양측 모두는 「양호」라는 평가를 내렸다. 하지만 항상 그렇듯, 협상은 아쉬움을 남긴다.
「단기채무 전체를 중장기 국채로 전환하고 금리는 10∼13%로 하자」 가혹한 「J.P모건안」 우리가 매달릴 수 있는 곳은 미국정부밖에 없었다. 협상시작 하루전날인 20일 워싱턴. 김용환 협상대표단장의 발언. 『미국 정부가 공식적으로 나설 입장은 아니지만 우리 장래를 걱정하는 오랜 우방으로서 조언과 의견교환이 있었다』 재무부는 물론이고 국무부와 공화당이 주류인 의회에 대해서도 「보이지 않는 라인」을 풀가동했다. 어느정도 성과가 있었음을 확인해주는 발언이었다. 조지 부시 전 대통령 등 주로 공화당 거물들을 접촉했던 한 재미 인사의 증언. 『협상 직전 주말 루디거 돈부시 MIT석좌교수에게 전화를 걸었다. 미국이 한국을 도울 수 밖에 없는 점을 지적하는 글의 월 스트리트저널 기고를 요청했다. 「이제는 굳이 그렇게 할 필요가 없다」는 응답이었다』
미국의 여론 주도층에서는 사실상 J.P모건안을 폐기했고 한자릿수 금리도 기정사실화한 상황이었다. 미 정부가 벌써 월가의 손을 비틀기 시작했다는 의미였다.
그러나 협상 하루전인 21일. 협상단은 『한자릿수 금리를 관철시키겠다』고 말했다. 목표수준을 너무 낮게 잡은 것이었다. 물정 모르는 한국대표단의 발언을 보다 못해 유럽계 은행들이 나섰다.
미국은행들 보다 물린 돈이 훨씬 많았던 유럽은행들은 J.P모건의 안대로라면 한국이 회생불능이 돼 돈을 받지 못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도이체방크가 선두에 섰다. 한 유럽은행 관계자의 말 『도이체방크를 비롯한 유럽 채권은행들은 1월13일 프랑크푸르트에서 회의를 가졌다. 「리보+2∼2.5%」라는 「도이체방크안」은 이때 그려졌다』실제로 28일 타결된 안은 「도이체방크안」이 거의 수용된 것이었다.
협상과정을 지켜본 한 관계자의 회고. 『큰 흐름을 제대로 읽었다면 0.25%포인트정도는 더 낮출수 있었던 협상』 0.25%포인트는 연간 6,250만달러에 해당하는 거액이다.
□특별취재반
이상호 경제부 차장대우
정희경 경제부 기자
이성철 경제부 기자
김준형 경제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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