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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벌개혁은 보약”/윤석민 뉴욕 특파원(기자의 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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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벌개혁은 보약”/윤석민 뉴욕 특파원(기자의 눈)

입력
1998.02.1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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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내 모 정보통신업체는 세계에서도 손꼽히는 우량 기업중 하나이다. 환율폭락으로 서울 주가가 무한정 하락하자 월스트리트의 투자자들도 『이럴 수가』라며 함께 안타까워할 정도로 「잘 나가는 기업」이다. 그런데 미 경제전문지 월스트리트 저널이 얼마전 보도한 이 회사 관련기사는 한국의 우량기업이 국제사회에서는 어떻게 비춰질 수 있는가를 잘 말해준다. 신문이 전한 사연은 이렇다. 이 회사는 최근 자금난을 겪고 있는 같은 그룹내 계열사에 여유자금을 빌려줬다. 액수는 정확하지 않지만 금리는 연 5%였다. 이 사실을 월스트리트의 이 회사 주식투자자가 알게 됐다. 그는 즉각 이 회사에 항의편지를 보냈다. 현재 한국의 시중금리가 연30% 안팎인데 어떻게 그렇게 싸게 대출해줄 수 있느냐, 그런 식으로 자산을 운용하면 결과적으로 회사의 주가를 떨어뜨려 주주인 자신도 손실을 안게 되니 당장 자금을 회수하라는 내용이었다. 이 회사는 서둘러 자금을 고스란히 빼겠다고 응답할 수밖에 없었다. 이 바람에 세계에서 손꼽히는 우량기업이라는 이미지에도 다소 손실을 입었다. 신문은 이 사례가 해당재벌 뿐만 아니라 한국 재벌의 보편적인 문제점중 하나라고 지적했다.

 예로 나온 수법은 「관행」이라는 보호막아래 횡행하던 재벌 계열사간의 「돈 나눠 쓰기」중 가장 간단한 사례에 속한다. 통상적으로 재벌은 A계열사에서 돈을 벌어도 그것은 A기업의 돈이 아니라 해당그룹의 자금이었다. 직설적으로 말하면 총수의 쌈짓돈이다. 소주주의 권리는 어디 있었는지 모르겠다.

 회장비서실과 기획조정실을 없애는 등의 이번 재벌 개혁은 간단히 말해 A기업이 번 자금이 아무렇게나 다른 계열사로 흘러가지 못하도록 하기 위한 것이다. 그래서 돈버는 기업은 초일류로 크고 그렇지 못한 기업은 같은 그룹에 속하더라도 도태돼야 한다. 총수에게도 지금처럼 함께 망해 수중에 아무 것도 없는 것보다는 득이 되는 조치일 것이다. 재벌이 버리는 것은 전근대적 부실기업이요, 얻는 것은 투명한 일류기업이다. 결국 재벌개혁은 독약이 아니라 보약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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