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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출구를 찾아라(대환란:9)

입력
1998.02.1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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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더십붕괴 대선겹쳐 “믿는건 시간뿐”/최단시일 협상끝냈지만 달러는 안오고 해외선 합의이행의지 불신 “플러그 뺀다”/재협상론 불거져 YS·3후보 격론/임 부총리 “불리해진것 없다” 정치권 파장 구제금융협상은 국제통화기금(IMF) 사상 최단시일내에 끝났다. 멕시코가 32일, 우리는 그 절반에 못미치는 12일. 국무회의가 2차례 무산된 탓일까. 12월 4일. 첫 경제대책회의. 임창렬 경제부총리는 이 점을 강조했다. 이날 주가는 모처럼 400선을 회복했다. 거래량도 1억주를 돌파했다.

 문제는 외환수급. 지원금은 200억달러에서 580억달러로 늘었다. 하지만 당장 들어오는 게 아니었다. 이중 연내 유입금은 90억달러. 이 기간에 갚아야 할 단기외채는 160억달러. 외환보유고는 60억달러. 빠듯했다. 상환만기연장과 추가수혈 없이는…. 최악의 사태를 생각해야 했다.

 5일 상오 10시. 재정경제원 대회의실. 워싱턴 IMF본부와 동시에 합의의향서가 발표됐다. 잠시 혼선. 98년 경제성장률(전망치)이 정부 발표문에는 3%. IMF 보도자료엔 2.5%. 『문서상 합의한 것은 약(About) 3%다』 임부총리의 단호한 답변으로 곧 봉합됐다.

 이날 밤 10시. 각 언론사가 금융기관으로는 34년만에 첫 부도처리된 고려증권 기사를 막 탈고하던 시간. 비상이 걸렸다. 재경원이 IMF 합의의향서 전문을 예고없이, 그것도 뒤늦게 보내 왔다.

 「어려움에 처해있는 2개 시중은행은 두달내에 자구계획을 제출해야 한다. 만약 감독기관의 장이 4개월내에 회생이 성공적이 아니라고 판단하면 이들 은행도 폐쇄된다」 『은행에 대해서는 폐쇄합의가 없었다』는 12시간전 임부총리의 설명과는 분명 다른 내용이었다.

 재경원 K국장의 증언. 『합의서는 원래 공개하지 않게 돼 있다. 그런데 하오 6시께 워싱턴에서 연락이 왔다. IMF 이사회가 공개했으면 한다는 것이었다. 어차피 약속한 터였고, 합의이행의지를 보이자는 차원에서 수용하기로 했다』

 그러나 합의의향서가 「판도라의 상자」가 될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다음날(6일) 임부총리가 기자회견을 자청했다. 『해당은행의 공신력유지와 금융시장 안정을 위해 IMF측과 공개하지 않기로 합의했었다』 『2개 은행은 증자 등을 통해 폐쇄되지 않도록 노력하겠다』 임부총리의 확언에도 불구하고 억측과 오해가 꼬리를 물었다. 예고없이 IMF를 당한데다 협상도 끌려다녔다는 인상이 남아있었던 때. 『혹시 굴욕적인 협상에 따른 책임을 피하기 위해 감춘 것 아니냐』

 판도라의 상자는 이미 뚜껑이 열렸다. 우선 금융시장이 걷잡을 수 없는 공황상태로 빠져들었다. 은행권은 이미 9개 종금사의 급작스런 영업정지(2일)로 대부분의 종금사들이 부도위기에 몰리자 콜자금 공급을 꺼리고 있던 상황. 은행 폐쇄 가능성까지 거론되자 더욱 몸을 사렸다. 『이제 누구의 말도 믿을 수 없다』 종금사들도 생존을 위해 무차별적인 여신회수에 나섰다. 그리고 기업이 도산했다. 악순환이 야기됐다. 이날 재계 서열 12위의 한라그룹이 무너졌다.

 『당시 IMF 합의사항을 충실히 이행해 대외신인도를 회복하는 게 급선무였다. 당연히 협상내용을 설명하며 국민들의 이해를 구해야 했다. 아니면 전략적인 접근을 했어야 했다. 금융시장 안정도 중요했다. 솔직히 장관들도 협상내용을 몰라 거들지 못했다』(정부 고위인사 A씨의 회고)

 책임론에 시달리고 있던 관리들은 피가 마르고 살이 타 들어갔다. 이후 거의 매일, 밤이고 낮이고 대책회의가 열렸다.

 7일 밤 10시. 서울 리츠칼튼호텔. 임부총리 이경식 한은총재 김영섭 청와대경제수석 이수휴 은행감독원장 서울·제일은행장이 모였다. 회의결과는 이튿날 아침 35개 은행장에게 그대로 전달됐다. 『9개 종금사외에 추가로 영업정지될 금융기관은 현재로선 없습니다. 종금사에 콜 자금을 지원해 주십시오』 그러나 역부족이었다. 불안감은 시장에 그대로 반영됐다. 3년만기 회사채 수익률이 약 16년만에 최고치인 연 22.95%까지 치솟았다. 종금사들의 외환난까지 겹쳤다. 환율은 상승제한폭(1,342원40전)까지 오른뒤 거래가 중단됐다.

 9일 상오. 서울·제일은행에 대한 정부출자방침이 발표됐다. 밤11시. 한은 강남지점. 부총리 경제수석 한은총재 등 빅 3와 윤증현 재경원금융정책실장 이은감원장 이근영 신용관리기금이사장 한은의 김원태 이사 박철 자금부장 등이 머리를 맞댔다. 『외환쪽도 어려운데 종금사를 어떻게 하죠』 『파이(외환)를 크게 할 수 없다면 파이가 필요한 사람(금융기관)의 수를 줄일 수밖에 없습니다』 결론은 5개 종금사의 추가 영업정지. 이튿날 발표됐다. 상황은 정부의 기대와 너무 멀어져 갔다.

 12일.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가입한지 만 1년이 되던 날이다. 동서증권이 법정관리를 신청한 가운데 한은이 은행 증권 투신 종금사에 11조3,000억원을 긴급지원했다. 환율은 1,700원을 넘어섰다. 주가는 350선에서 턱걸이를 했다. 달러는 들어오지 않았고, 롤오버(Roll over·상환연장)율도 호전기미가 없었다. 정부정책에 대한 비난이 안팎에서 쏟아졌다. 『부실은행에 대한 출자 등은 IMF 합의정신에 어긋나는 것이다』(10일자 파이낸셜타임스)

 달러를 빨리 들여오려면 IMF와의 약속을 이행하는 수밖에 없었다. 정치권의 도움이 절대적으로 필요했다. 하지만 김영삼 대통령은 이미 탈당과 동시에 중립을 선언했었다. 한나라당은 여당이 아니라 다수당이었다. 당정협의조차 열리지 못했다. 정치권은 「대권」이 급했다. 경제위기에 장밋빛 공약을 묵혀둘 수밖에 없던 터에 「IMF 이면합의 의혹」은 좋은 이슈였다. 재빨리 낚아챘다. 한나라당 국민회의 국민신당은 일제히 의혹을 제기했다. 『IMF 권고가 가혹하다』는 여론이 일자 「재협상론」으로 진전했다. 대선후보들의 뜨거운 공방으로 이어졌다.

 『재협상 발언이 대선이후에도 계속된다면 한국에 전기를 공급하는 플러그를 빼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다』(10일자 워싱턴포스트) 다음날(11일) 미국의 신용평가기관 무디스는 한국의 국가신용등급을 준정크본드수준인 「Baa2」로 떨어뜨렸다. 스탠더드 앤드 푸어스(S&P)사도 마찬가지였다. 『한국에 추가자금을 지원해야 할 지, 아니면 채무불이행(디폴트·Default)을 허용한뒤 사태해결에 주력해야 할지 양자 택일을 해야 한다』(12일자 파이낸셜타임스). 디폴트는 곧 국가부도인 모라토리엄. 재협상론을 제기한 김대중 후보측은 당황했다.

 「대선 D­5일」(13일) 상오 9시 청와대 본관 2층 백악실. 김대통령이 원탁중앙에 자리를 잡았고 왼쪽에 김대중후보, 오른쪽으로 이회창 후보 이인제 후보가 나란히 앉았다. 『세계언론이 한국을 믿을 수 없다며 국제사회에서 약속을 안 지키는 나라라고 보도하고 있다』(김 대통령) 『김후보가 재협상을 주장하는 바람에 산업은행이 해외기채를 못하는 등의 사태가 일어났다』(이회창 후보) 『(재협상은)추가협상을 하자는 것이지 합의를 전면 부인하자는 것은 아니다』(김대중 후보) 서로 얼굴을 붉힌채 격론이 벌어졌다. 이인제후보가 나섰다. 『임부총리, 재협상 발언때문에 국제신인도가 떨어진 겁니까』 『특별히 상황이 불리해진 것은 없습니다』 임부총리의 「유권해석」은 의외였다. 순간 이회창 후보의 표정이 굳어졌다. 1시간10분만에 IMF 합의사항을 준수하겠다는 공동발표문이 마련됐다.

 재협상론이 사태악화의 주범이었을까. 『대선으로 인한 리더십부재, 그리고 정부정책에 대한 불신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했다고 봐야 한다. 11월초 정부는 「IMF처방이 동남아에는 적합하지 않다」는 제프리 삭스 미국 하버드대교수 분석 등을 인용해 IMF의 「I」자도 꺼내지 못하게 하지 않았나. 정치권이 선거를 의식, 지나치게 공론화한 것도 문제였다』(금융계 인사 C씨) 정부일각과 일부 언론은 대선직전까지 IMF에 대한 비판론을 「국수주의」로 몰아붙였다.

 15일 하오 8시. 빅 3와 정덕구 재경원2차관보 김영태 산업은행총재 이관우 한일은행장 등이 모였다. 『외환시장이 비정상적이다』 『IMF가 하루변동폭 철폐를 요구해 왔다』 『환율제한을 트자』 밤 10시30분 재경원 기자실. 『내일부터 환율변동제한폭을 없애기로 했습니다』 다음날 환율은 100원가량 떨어졌다. 주가는 1주일만에 400선을 회복했다. 외국인투자자들의 구미를 당길만 했다. 그러나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대선이 끝날 때까지 정부의 대응력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반응뿐. 관료들 능력 밖으로 멀어져갔다. 믿는 건 시간뿐. 이제 대선이 끝나면…. 탈출구가 보일 것 같았다.

◎압축성장 신화붕괴 97년 일지

 한보부도에서 국제통화기금(IMF) 구제금융 요청까지. 갖가지 경제사건으로 얼룩진 97년은 한국경제사에서 지워지지 않는 한해가 될 것이다. 30여년간의 압축성장의 허실이 한순간에 드러났다. 대환란이 야기되기까지의 주요 사건을 정리한다.

◆1월 4일 주가폭락 (643.41·3년9개월만에 최저)

    21일 김영삼 대통령,노동법 재개정 결정

    22일 대통령자문 금융개혁위원회 발족

    23일 한보철강 부도

◆2월 1일 김대통령 한보사건 엄정수사지시

    26일 전경련 기조실장회의, 30대그룹 사원임금 동결 결의

    28일 청와대 비서실 개편, 김인호 경제수석 임명

◆3월 5일 개각, 강경식 경제부총리 임명

    10일 노동법 국회통과

    19일 삼미특수강 법정관리신청

    21일 한보사건 전면 재수사

    25일 환율 900원 돌파

◆4월 7일 한보청문회 시작

    15일 부도방지협약 체결

    21일 진로그룹 부도유예

    28일 30개 종금사 부도방지협약 가입

◆5월17일 김현철씨 구속

    28일 대농그룹 부도유예

◆6월 2일 한신공영 부도

    16일 정부 금융개혁안 발표

◆7월15일 기아그룹 부도유예

◆8월12일 (주)세모 부도

◆9월 2일 부도유예협약 개정(경영권포기각서 제출등)

     8일 진로그룹 화의신청

    22일 기아자동차 등 화의신청

◆10월1일 미국 한국자동차시장 슈퍼 301조 발동

    15일 쌍방울 부도

    19일 김선홍 기아회장 사표제출

    22일 정부 기아처리방안(법정관리후 공기업화) 발표

    24일 태일정밀 부도유예

◆11월1일 해태그룹 부도

     4일 뉴코아그룹 부도

     5일 미국 블룸버그통신 「한국 IMF자금지원 요청 가능성」보도

   10일 환율 1,000원 돌파

    16일 미셸 캉드쉬 IMF총재 극비방한

    19일 강부총리 경질, 임창렬 부총리 임명

    20일 환율변동폭 상하 2.5%에서 10%로 확대

    21일 IMF 구제금융 공식요청

    23일 IMF 실무협의단 내한

    26일 수산중공업 화의신청

◆12월2일 9개 종금사 영업정지

     3일 IMF 협상타결

     5일 고려증권 부도

     6일 한라그룹 부도

     8일 대우, 쌍용자동차 인수결정

    10일 5개종금사 추가 영업정지

    12일 동서증권 부도

    16일 환율변동폭 철폐

    18일 대통령선거

    19일 김대중 후보 당선, 신세기투신 영업정지

    21일 미국 신용평가기관 무디스사 한국 신용등급 정크본드수준으로 하향조정

    23일 미국 신용평가기관 S&P 한국 신용등급 정크본드수준으로 하향조정

    25일 IMF와 13개 선진국, 지원금 조기지원 발표

    27일 청구그룹 부도

    29일 금융개혁법안 및 이자제한법 폐지안 국회통과

□특별취재반

이상호 경제부차장대우

정희경 경제부 기자

이성철 경제부 기자

김준형 경제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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