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조조정안 「기업별 평준화」 묵계 재계가 재벌개혁에 대한 반발의 수위를 높여가고 있다. 연초부터 쏟아진 재벌개혁을 놓고 차기정권측의 강도 높은 요구에 침묵하던 입장을 바꿔 본격적인 줄다리기 과정으로 들어갔다. 내용에 따라서는 재계의 「전가의 보도(전가보도)」인 현실론을 앞세워 신정권측의 요구에 정면으로 반발하고 나섰다.
30대그룹의 모임인 전국경제인연합회는 12일 회장단회의를 통해 재벌개혁의 핵심사안인 상호지급보증해소와 결합재무제표작성에 반론을 공식화했다.
상호지급보증을 신용으로 전환해 일시에 해소하는 방안을 내놓는가 하면 결합재무제표도 「국제기준」이라는 명분을 내세워 차기정권의 요구와는 다른 별도의 방안마련을 시사했다. 비대위측이 구조조정안을 제출해 달라는 시한(14일)을 코앞에 두고 정면반발로 태도를 선회한 것이다. 회장단은 구조조정안제출에도 「튀는 기업없이 수준을 평준화」하기로 묵계를 한 것으로 알려졌다.
재계의 개혁에 대한 발목잡기는 이미 대선직후 신정권의 재벌정책이 가시화하는 동안 수면 아래에서 계속되어 왔다. 재계는 김대중 대통령당선자의 4대재벌총수회동, 30대재벌총수회동 등을 통해 개혁의 원칙에 합의했지만 구체적인 지침이 나올 때마다 현실상의 문제를 들어 시간을 끌어 희석시키거나 무효화해 왔다. 총수의 사재출연은 삼성 롯데 일부기업이 시늉을 내는데 그쳤고 빅딜(대규모 사업교환)은 대우그룹의 미국 제너럴모터스(GM)와의 합작발표 이후 현실적 어려움을 나열하면서 유야무야됐다. 회장실 기조실 축소폐지문제는 11일 30대그룹 기조실장회의를 통해 지주회사설립때까지 현실적으로 기능을 유지하겠다고 사실상 반대방침을 밝혔다.
재계의 입장선회에는 나름대로 이유도 있지만 여러가지 계산이 깔린 것으로 보인다. 특히 노사정대타협이 이뤄진 만큼 시간을 벌 여지가 생겼다고 본다. 여기에 재벌개혁이 막판과제로 몰리자 제동장치가 필요하다는 판단이 선것으로 풀이된다.
이같은 재계의 전략에는 재벌정책에 대한 신정권의 입장도 내부적으로 분열상을 보이고 있는 점도 한몫한 것으로 보인다. 비대위와 인수위, 그리고 국민회의와 자민련의 입장차이가 김당선자의 의중과는 상관없이 일관된 정책추진을 어렵게 해온 것이 사실이다. 재계는 행동통일을 통해 피해를 최소화하는 한편 재계의 「현실론」에 대한 여론 확산과 신정권에 대한 설득작업을 통해 궁극적으로 재벌정책의 선회를 끌어낼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이재열 기자>이재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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