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사정위원회에서 합의된 구조조정(정리해고)안에 반발, 13일부터 총파업에 돌입하려 했던 민주노총이 파업을 철회했다. 최악의 국면으로 치달을 뻔했던 경제위기를 면하게 한 점에서 매우 다행스런 일이고, 시민들도 안도감으로 가슴을 쓸어내리고 있다. 그러나 민노총은 『노사정 합의안을 수용하는 것은 아니므로 임시국회에서 정리해고제 등을 강행처리하려 든다면 총력투쟁을 벌일 것』이라고 밝히고 있어 아직도 불씨가 꺼진 것은 아니다. 민노총은 노사정 합의안을 거부하고 있지만 대타협 과정에서 노조의 정치참여와 전교조 합법화, 공무원협의회 구성 등 자신들이 주장해 온 사안에서 성과를 거두었다. 민노총이 정리해고제를 수용하기 어려운 처지라는 것을 이해는 하지만, 이런 성과는 당연시하고 노사정이 오랜 진통 끝에 이뤄낸 정리해고제의 무효만 주장하는 것은 이기적이고 독선적인 처사이다.
민노총은 예전과 같은 사고와 행동방식으로는 IMF시대를 이겨낼 수 없다는 점을 인정하고, 파업철회에서 그랬던 것처럼 고용조정의 법제화 과정에서도 대승적이고 성숙한 모습을 보여주어야 한다. 실제로 파업 예정일이 다가오는 동안 주가, 환율 등 주요 경제지표가 다시 크게 악화했고 회복국면에 접어드는 듯했던 대외 신인도마저 다시 곤두박질치면서 위기가 급격히 고조되었다.
외신들 또한 노동계의 반발과 관련, 한국 경제의 회생능력을 매우 비판적으로 보도했다. 미국 월스트리트 저널은 『노동계의 파업예고는 개혁을 향한 한국의 상황이 얼마나 위태로운지를 보여준다』고 지적했고, 블룸버그통신은 『노동계의 반발로 한국투자에 대한 월가의 반응이 「진출하자」에서 「기다려 보자」로 바뀌고 있다』고 보도했다.
민노총이 대국적 차원에서 정리해고안을 수용한다고 해서 그것이 무장해제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파업철회 조건으로 재벌총수의 퇴진 및 사재헌납, 노동자 경영참가법 개정, 부당노동행위 근절 등을 함께 내세웠듯이 민노총은 민주적인 절차를 존중하면서 확고한 실업대책 등을 요구하고 정부와 기업이 노사정 합의안을 철저히 이행하도록 촉구와 감시를 해야 한다.
지금 임시국회는 주요 개혁입법 처리에 여야 간 갈등을 빚고 있고, 재계는 상호지급보증 해소와 결합재무제표작성 의무화 정책을 받아들이지 못하겠다고 버티는 등 IMF체제를 넘기 위한 주요 사항들이 장애를 맞고 있다. 이제 민주노총이 힘든 결정을 내린 것처럼 정부와 재계도 그 이상의 행동을 보여야 한다. 그것은 정치권과 재벌이 집단 이기주의를 버리고 경제를 정상화시키기 위해 한층 더 강도높은 구조조정과 개혁작업을 서두르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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