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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사정 합의 존중 마땅/안동일 변호사(아침을 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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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사정 합의 존중 마땅/안동일 변호사(아침을 열며)

입력
1998.02.1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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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사정위원회는 김대중 대통령당선인(공직선거법상 용어는 「당선자」가 아니라 「당선인」임)의 지시에 따라 경제위기 극복을 위한 국민적 합의를 이끌어 내기 위해 지난달 15일 발족하여 우여곡절 끝에 6일 대타협의 공동선언문을 채택하였다. 노사정 합의안 가운데 입법사항은 앞으로 국회에서 더 논의될 것이지만 노사정 세 주체가 전례없는 결단과 양보를 통하여 공동의 절박한 목표를 위해 고통분담의 대타협을 이루어낸 것은 높이 평가받아야 한다. 이렇게 역사적인 대타협을 이룬 지 사흘 만에 노측의 한 축인 민주노총이 대의원 총회를 열어 합의안 무효화를 결의하고 재협상 요구가 받아들여지지 않을 경우 13일 오후부터 총파업 투쟁을 하겠다고 한다.

 참으로 민주사회에서는 도저히 있을 수 없고 또 있어서는 안될 일이 또다시 벌어지고 있는 현실에 경악과 우려를 금할 수 없다. 그들은 교섭권을 위임받은 대표자들이 맺은 합의안을 대의원 총회의 이름으로 부인할 뿐 아니라 문제 해결에 있어서도 탈법적이고 부당한 비민주적 발상을 서슴지 않고 있다. 노사정 합의안에 불만이 있다면 앞으로 남아 있는 입법과정에서 그들의 주장이 관철되도록 합법적인 방법을 강구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 만약 그들이 이번에도 과거와 같이 비민주적이고 불법적인 방법을 시도한다면 국민 염원에 대한 배반이 될 것이다. 가뜩이나 어려운 경제사정에 총파업이라는 극단적인 상황으로 몰아가려는 민주노총측의 구태에는 그 누구라도 등돌릴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민주노총」은 민주노총의 「민주」가 부끄러움을 깨달아야 한다.

 이제 더이상 목적을 위해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아도 되는 시대는 아니다. 또한 소수의 의견이 아무리 귀중하더라도 다수를 이길 수 없는 것이 민주주의의 원칙임을 알아야 한다. 우리의 이상과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더디더라도 마땅히 적법절차와 합리적 과정을 거쳐야 함은 민주사회가 지켜야 할 최소한의 규칙이다. 제아무리 좋은 목적을 위해서라도, 또 한시도 기다릴 수 없는 시급한 상황이라도 반드시 법절차를 거쳐야 한다. 이점에서 차제에 몇가지 법치주의 원칙에 관하여 고언하고자 한다. 현정부의 실패원인을 말하는 가운데 여러가지가 있을 수 있겠으나 필자는 한마디로 법치보다 인치를 내세웠기 때문이라고 지적하고 싶다. 5년전 필자는 현정부에게 인치보다는 법치를 중시하기를 주문하였다. 「문민정부」의 요체는 법치주의에 달렸기때문이다. 90%가 넘는 여론의 지지를 받을 때에도 법절차를 따라 국정을 수행해줄 것을 당부하였고 취임전에는 대통령직 인수위법의 제정을 건의하였다. 취임 직후 공직자 재산공개를 선도하였을 때에도 법을 만들어 시행해야 한다고 지적하였고 심지어 긴급명령으로 금융실명제를 하였을때에도 법절차에 따를 것을 호소하였지만 언제나 법보다는 깜짝쇼를 즐겼다. 「변화와 개혁」이 시급한데 언제 골치 아프게 법을 따지고 법절차를 기다리냐는 것이다.

 탈레스의 말대로 역사는 유전하고 되풀이 되는 것인가? 이번에도 필자는 김대중 당선인측은 먼저 「대통령직 인수위원회법」의 제정을 국회에 요구하여야 한다고 주장하였으나 아직 그대로이다. 지금까지도 인수위의 위상과 기능을 가지고 과거 「국보위」같다느니 월권이니 왈가왈부하는 것은 법률적 근거가 없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김대중 당선인이 대통령 취임전이라도 한국전쟁에 버금가는 국난극복을 위하여 참으로 필요하다면 「비상경제대책위원회」 「정부조직개편위원회」는 물론 「노사정위원회」도 법률로 근거를 만들어서 시행했어야 했고 아니면 현정부나 국회에 맡겼어야 했다. 그래야 법률적 뒷받침을 가진 합법적인 기관으로 헌법과 법률에 따른 권리와 의무를 다할 수 있으며, 나아가 그러한 기관의 의견을 다른 입법기관에서도 존중하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법적 뒷받침이 있었다면 오늘의 국회파행은 초래되지 않을 것이다. 최근 행정부처에서 보고해야 하는 곳이 열군데나 된다고 하니 아무리 위급상황이라도 이러한 시스템으로는 오히려 혼란만 초래할 것이다.

 만약 지금 당장 안보와 경제문제와 관련하여 위급상황이 발생한다면 누가 책임져야 하며 결정해야 하는가? 두말 할 것도 없이 현직 대통령과 국무회의이며 국회이다. 국가가 위기일수록 「국민의 정부」는 법과 절차를 따라야 한다. 아무리 급해도 바늘 허리에 실매어 쓸 수는 없지 않은가. 대통령 취임전에 벌써 90%의 지지와 세계 언론의 찬탄을 받는 김대중 당선인이라도 이 점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김당선인이 당선 직후 강조한 「민주주의와 경제」의 양축 가운데 민주주의야말로 법절차가 생명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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