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성의 대표적 장편소설 「도둑일기」는 6·25때 고아가 된 세 형제가 황량한 세상에서 홀로 서가는 과정을 그린 성장소설이다. 구두통을 만들 송판과 광을 낼 우단을 훔쳐 구두닦기를 시작한 그들은 사업가 소설가등의 길을 걷는다. 막내는 성당 의자에서 우단을 뜯다 잡힌 것이 인연이 되어 사제가 된다. ◆그가 우단을 훔치던 성당으로 설정된 곳이 11일 부랑인의 방화로 소실된 서울역 뒤의 약현성당이다. 1892년 프랑스인 코스트 신부의 설계로 축성이 시작된 이 성당은 국내 최초의 서양식 교회건물이다. 단순한 로마네스크 양식에다 벽돌을 직접 만들어 지었다는 점에서 건축사적 가치도 크다. ◆현재 우리 대도시는 편의성을 추구한 모더니즘 건물들로 뒤덮여 개성을 잃었지만, 당시 높고 뾰족한 종탑이 있는 성당건물은 그 지역의 풍경을 바꿔 놓기에 충분했다. 약현성당과 6년 뒤 축성된 명동성당은 한국 교회건축의 모범이 됐으며, 67년 한강변 양화진에 세워진 절두산성당은 종교건축미의 한 절정을 보여주었다. ◆그러나 몇해전 「교회와 미술가의 역할」이라는 좌담회에서 지적된 가톨릭미술의 현주소는 매우 우울했다. 김수환 추기경도 참석한 이 자리에서는 20년 동안 가톨릭 서울교구에서 1백여개의 새로운 성당이 지어졌으나, 조형적으로 미흡해서 이중 30여개가 헐리고 다시 지어졌다고 보고되었다. ◆대개는 외국 건축물의 모방에 급급한 것이고 그림과 조각의 수준도 매우 낮다고 반성되었다. 마침 다채로운 명동성당 축성 1백년(5월29일) 기념행사가 펼쳐지기 시작한 시점에 약현성당이 소실되는 가슴 아픈 사고를 맞았다. 그 엄청난 손실을 생각하면서 가톨릭미술, 혹은 모든 종교미술을 뒤돌아 보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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