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초 사노 료이치(좌야량일)란 일본인 후배가 불쑥 찾아왔다. 갑자기 웬일이냐고 물으니 김민기씨가 연출한 뮤지컬 「지하철 1호선」을 보러 왔다고 했다. 그러고 돌아간 한달 후인 10일 그가 다시 나타났다. 이번엔 예술의 전당에서 공연중인 악극 「눈물젖은 두만강」을 관람하러 왔다는 대답이었다. 자주 오는 것이 멋쩍었던지 『환율이 올라 도쿄(동경)서울 왕복 비행기값이 2만엔밖에 안돼요. 도쿄에서 오사카(대판)를 다녀 오는 것보다 싸니까요』하며 능청을 떨었다. 그가 일본에서 한국전문가로 활약하고 있는 것은 알고 있지만 뮤지컬이나 악극을 보러 서울나들이까지 하는데는 놀라지 않을 수 없다. 단순히 관람을 하는 것이 아니다. 출연자나 연출자를 만나 보는 것도 부족해 대본이나 팸플릿을 구해 외울 정도로 정독을 한다. 이러한 모습을 볼 때마다 한 나라의 전문가가 되려면 이 정도의 공부는 해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는 48세의 독신으로 도쿄도에 있는 다마미술대를 중퇴했다. 20년전 어느날 갑자기 한국이 알고 싶어 부산행 페리호에 몸을 실었다. 처음 부산항에 내려섰을 때 「이곳이 대륙이구나」하고 감격했다며 대륙을 동경하는 섬나라 국민의 감정을 숨기지 않았다.
서울대 어학훈련기관에 적을 두고 한국연수에 들어간 후 그의 삶은 한국을 떠나서는 생각할 수 없다. 서울에서 직장생활을 하기도 했고 한때는 도쿄에서 한국신문사의 기자로 근무하기도 했다. 그 때문인지 한국어 실력도 뛰어나고 한국인 친구도 많다. 자기가 점심을 사려다 누가 돈을 대신 내주면 「오늘 돈이 굳었다」고 표현하고 한국어로 일본에 대해 이야기하다가 한국사람처럼 일본사람을 자기도 모르게 「일본놈」이라고 할 정도다.
한국의 음식 영화 대중가요 등에 대한 지식도 아주 깊다. 특히 인간문화재 황혜성씨에게 배운 궁중요리 솜씨는 상당한 수준이다. 책도 썼고 한때 이를 바탕으로 도쿄에서 음식장사를 하기도 했다. 지금도 주일한국문화원이 발행하는 기관지 「한국문화」에 「한국8도의 식세시기」를 연재하고 있다.
원로작곡가 황문평씨를 가까이하며 관심을 갖기 시작한 한국 대중가요는 가요 반세기의 대표적인 노래는 물론 노래에 얽힌 에피소드까지도 알고 있다. 영화사랑도 현재 한국상영이 문제가 되고 있는 목포거지대장 부인이었던 다우치 치즈코(전 내천학자)여사의 고아사랑을 그린 「사랑의 묵시록」을 기획할 만큼 남다르다. 이같은 그의 한국에 대한 관심과 사랑은 서울대시절 자주 찾던 왕십리 막걸리집의 주모가 젓가락으로 상을 두드리며 구성지게 노래부르던 「니나노」를 한국사람보다 더 그리워하는 데서도 엿볼 수 있다.
이처럼 한국을 밑바닥에서부터 파고들었기 때문인지 그는 한국사람들은 왜 일본을 체계적으로 공부하지 않느냐고 묻곤 한다. 진정한 일본전문가가 드물다는 것이다. 한국에 올 때마다 50년전의 일본이 그대로 살아 움직이고 있는데 놀란다고 한다. 일본은 지난 반세기동안 엄청나게 변했는데도 한국사람들의 일본에 대한 지식과 감정은 옛날과 큰 차이가 없다는 것이다. 극일도 체계적인 공부를 통해 자기나름의 논리를 마련해야 가능하다는 충고다.
지금처럼 서로가 차이점을 부각시키거나 감정만을 내세워서는 극일도 한일양국의 진정한 친선도 기대할 수 없다고 한다. 민간교류를 통해 차이점보다 서로 닮은 점을 찾아 이를 강조하고 이를 바탕으로 서로 이해의 폭을 넓혀 나가는 길 밖에는 현재 양국간에 깊게 파여 있는 골을 메울 수 없다는 것이다.
이러한 점에서 그는 김대중 정부의 등장과 함께 현실화하고 있는 일본대중문화에 대한 한국시장 개방을 반기면서도 한쪽으로는 걱정도 한다. 문화가 필요에 따라 흐르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나 이를 위해서는 수용태세를 갖추는 것이 중요하다고 한다. 기준을 마련해 순차적으로 받아들이고 자칫 생길 수도 있는 양국간의 마찰이나 부작용에 대해 철저히 대비하지 않으면 오히려 양국의 친선을 해칠 우려가 있다는 것이다. 상대국을 많이 알게 되면 상대를 이처럼 걱정하게 되나 보다. 한일관계가 어느 때보다 경직된 때라 그의 말이 예사롭게 들리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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