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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입력
1998.02.1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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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복궁 북쪽의 향원정 뒷길은 조용하다. 휴일이면 북적대는 인파도 그쯤에서는 한결 줄어든다. 하지만 외국인 관광객의 발길은 여전히 끊이지 않는다. 그 곳에는 한국전통공예미술관이란 현대식 건물이 있고, 그 안에 나전칠기와 도자기 목공예 한지 표구 침선 도금 붓 등을 만드는 12공방이 있기 때문이다. ◆공방장인들은 그 곳에서 우리의 미감이 깃들인 전통 생활용품이나 공예품을 직접 만들어 보이고 판매도 한다. 그 곳은 경복궁 안에서 유일하게 살아 숨쉬는 문화공간이자 몇세대가 함께 보며 자부심을 느끼는 산 교육장이다. 이 전통공예의 산실이 최근 문을 닫았다. 경복궁 복원사업의 물결에 쓸려 설 땅을 잃은 것이다. ◆장인들은 『내외국인에게 우리 문화의 우수성을 알리는 12공방을 대책도 없이 폐쇄해서는 안된다』고 저항했다. 그들은 또 경제난 속에 우리 기술과 재료로 외화를 벌어들일 수 있는 공방을 폐쇄하는 것이 옳은가라고도 항의했으나, 3월에는 공방이 철거될 예정이다. ◆경복궁은 마땅히 복원돼야 하지만, 고궁은 역사의 화석들만 모아놓은 납골당도 아니며 엄숙한 수도원도 아니다. 지금의 고궁은 내외국인에게, 그리고 미래를 향해 열려 있는 공간이어야 한다. 고궁 한 구석에 매점과 식당이 있듯이, 전통과 현대가 만나는 12공방을 운영하는 것 또한 자연스런 일이다. ◆얼마 전 내한한 프랑스의 문명비평가 기 소르망은 『한국은 예술을 지원해 국가경쟁력 차원에서 문화이미지를 높이는 것이 관건』이라고 충고하기도 했다. 전통공방을 경복궁 덕수궁 등 외국인을 포함한 관광객이 많은 고궁에 존속시키거나, 세계적으로 이름이 알려진 미술의 거리 인사동에서라도 계속 운영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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