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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입력
1998.02.1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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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차대전이 끝난 후 연합국측 전범재판에서 일본인은 7명이 사형을 당한데 비해 한국인은 23명이 희생됐다. 일본인은 연합국 정부 공동의 도쿄재판에서 A급으로 기소된데 반해 한국인은 아시아 49개 지역에서 BC급을 대상으로 열린 「지방재판」에 회부됐기 때문이다. ◆전범으로 기소된 한국인은 1백48명, 이중 1백29명이 민간인 신분의 포로감시원이었다. 일제는 병력자원을 아끼기 위해 3천명의 한국 젊은이를 감시원으로 투입했는데, 패전후 연합국 포로들이 이들을 학대 혐의로 무더기 고발한 것이다. 식량부족과 강제노동으로 인한 포로들의 떼죽음이 한국인 책임이 됐다. ◆그 중 한사람인 재일동포 문태복씨가 지난주 도쿄에서 한많은 일생을 마감했다. 스가모형무소 복역중 가석방된 그는 손해배상 투쟁에 여생을 바쳤다. 한국인 전범자 출신 모임 동진회 회장일을 맡아보면서 91년 11월 동료 6명과 함께 손해배상 소송을 내 억울함을 호소하기에 있는 힘을 다했다. ◆재판일정이 늦어지자 그는 92년 8월 일본 총리에게 낸 탄원서에서 『해마다 4∼5명씩 동료들이 죽어가고 있으니 우리가 살아 있는 동안 재판이 끝나도록 선처해 달라』고 호소했다. 93년 9월 1심이 기각결정으로 끝나자 그는 곧 항소, 선고공판을 20여일 앞두고 감기지 않는 눈을 감았다. ◆이 재판 뿐 아니다. 많은 한국인 전쟁 피해자들이 일본 법정에 보상 소송을 냈으나 어떤 재판도 당사자가 살아 있는 동안에는 끝나지 않았다. 사할린 잔류 한국인들의 소송은 원고가 모두 죽자 실익이 없다는 이유로 각하됐다. 일본엔 시간이 유일한 약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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