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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개혁의 ‘쥐불놓이’(화요세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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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개혁의 ‘쥐불놓이’(화요세평)

입력
1998.02.1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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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비용 저효율’ 정치권 마른풀 태워 새싹나듯 알량한 기득권 버리고 스스로 다시 태어나야” 내일이 정월 대보름. 첫 보름달이 떠오르는 대보름이야말로 밝고 활기찬 명절일 수 밖에 없다. 윷놀이 연날리기 다리밟기 쥐불놓이 달집 태우기…. 특히 암줄 수줄 늘여놓고 남녀가 힘을 모아 줄을 당겨 암줄의 여성편에게 승리를 안겨줌으로써 풍년이 들거라고 믿는 줄다리기야말로 요즘 정치권의 줄다리기와는 사뭇 다르다. 모두가 함께 잘 살아보자는 공동체의 공생철학이 여기엔 담겨 있다. 그리고 정월 대보름은 풍요의 원점이기도 하다. 봄의 시작도 여기에서부터이니까.

 이제 겨울의 암울한 흔적들을 털어내고 새 봄을 맞을 때다. 마른 풀을 태워 그 자리에 새싹이 돋게 하는 경제회생의 쥐불놓이라도 해보자.

 노사정 대타협으로 일단 IMF 위기극복의 기반이 조성되었고, 공생관계를 모색할 수 있는 기초가 갖춰졌다. 김대중 당선자의 얼굴이 활짝 펴졌고 가는 곳마다 흐뭇한 표정으로 노사정 대타협 얘기를 꺼내며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했다는 것만 보아도 그가 얼마나 이 때문에 고심했는지 금세 알 수 있다.

 『오늘 이 나라가 희망이 있는 나라라고 느꼈고, 이제 우리는 새 출발을 하게 됐다』면서 김대중 당선자는 『국민의 관심속에 국운을 좌우할 합의를 이뤄낸 것은 역사상 처음』이라고 의미를 부여하기도 했다. 비록 고통분담이라는 무거운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언덕을 올라가야 하지만 서로가 이 짐을 나누어 지고 함께 전진하는 공동전선을 펼친다면 고통은 머지않아 축복이 되고 환희가 될 수 있으리라 믿는다.

 그런데 아직도 이같은 타협과 화합의 분위기와는 달리 서로의 몫을 놓고 힘겨루기만 하는 곳이 있다. 국회의장 스스로 「고비용 저효율의 산실」이라고 인정한 국회가 바로 그곳이다. 최근 여론조사에서 고통분담이 제대로 안되고 있는 분야가 정치권이라고 지목했듯이 정치인들은 아직도 IMF 무풍지대인양 겨울잠에서 깨어나지 못하고 있으니 참으로 딱한 노릇이다.

 정치를 개혁하고 체질을 개선해서 국민이 바라는 모습으로 나아가야 할텐데…. 과연 말대로 이번만은 정치권의 구조조정이 이루어질 수 있을까. 누군들 집권초기에 개혁하고 뒤집고 모든 걸 새로 시작한다고 하지 않은 경우가 있었던가. 국민들은 아직 반신반의하는 눈빛이다. 그런 가운데 이상하게도 『그래도 이번만은…』하는 기대 섞인 마음으로 IMF한파속에 휩쓸려 가는 정치권의 흐름을 눈여겨 지켜보는 이유는 어디 있을까.

 지난날의 「정치개혁」이란 것은 그저 그렇고 그런 것이었다. 정권들이 번번이 실패한 「혁명중의 혁명」이었을 뿐, 국민들의 행복추구권과는 상관도 없는 일이었다. 오히려 개혁의 불똥이 잘못 튀는 바람에 공연히 손해보고 불안하기만 했다.

 그동안 우리 정치는 붕당정치(Faction) 패거리정치의 전근대성과 취약성에서 벗어나지 못했고 우리 정당들은 정치적 신념(Political Conviction)이나 노선중심이 아니었다. 1인 보스(Boss)를 중심으로 이합집산을 거듭해온게 사실이고 총재가 바뀌면 정당의 이름까지 바뀌는 경우를 그동안 너무 많이 보아왔다. 말하자면 국민을 위한 정치가 아니라 특정인의 「권력쟁취의 수단」으로서의 정치가 존재했을 뿐이다. 그런데 사회 구석구석에 IMF한파가 몰아쳐 모두가 극심한 몸살을 앓고 있고, 온 국민이 자기개혁을 요구받고 있는데도 유독 정치권만이 무풍지대처럼 뒷짐만 지고 있다면 이게 정말 말이나 되는가.

 IMF한파가 어디서부터 왔다고 보는가. 따져보면 그것은 「고비용 저효율」의 정치권이 분명하지 않은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뉘우치기는 커녕 아예 나몰라라 한다면 그걸 좋아할 국민이 어디 있겠는가. 이제는 더이상 정치권은 성역이 아니다.

 정치인들이 앞장서 스스로 뼈를 깎는 개혁으로 다시 태어나지 않는한 그리고 그 알량한 기득권을 포기하지 않는한 우리 조국의 앞날은 암울할 뿐이다. 맹자의 「여민락」에 이런 말이 나온다. 『윗사람(지도층)이 백성의 즐거움을 더불어 기뻐하면 백성 또한 그의 기쁨을 같이 즐거워 할 것이고…』 글자 그대로 여민동락, 또는 동고동락의 공동체정신을 발휘할 때 더불어 사는 사회, 함께 기쁨을 나누는 공동체는 이뤄지는 것이다.

 내일이 정월 대보름. 새 대통령의 취임식도 보름 앞으로 다가왔다. 순탄치 않았던 정치 역정만큼이나 그의 앞날도 기약할 순 없다. 그래도 지난 두달동안 높은 산과 깊은 물을 용케도 잘 건너온 셈이다. 이제는 IMF 한파를 이겨내고 제2의 「한강의 기적」을 이루는 위대한 정부를 출범시킬 수 있도록 모두 기도할 때다. 이번 주말에 명동에 모여 기도라도 해야지.<봉두완·광운대 교수·신문방송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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