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이 오고 있다. 꽁꽁 얼어붙었던 대지에 새 생명이 꿈틀거리는 소리가 들려오는 것 같다. 입춘이 지났고 우수 경칩이 멀지 않았다. 계절은 어김이 없다. 이처럼 어김없이 찾아오는 계절의 봄과 함께 이 땅에 사는 우리들의 마음속에도 봄은 찾아오려는가. 정치에도 경제에도 봄은 정녕 찾아오려는가. IMF한파 빅딜 환란 명예퇴직 정리해고 구조조정 복지부동 M&A. 날이면 날마다 새로 듣게 되는 이 낯선 어휘의 얼음덩이를 화끈하게 녹여줄 봄아 오라. 봄을 기다리는 우리의 소망이 이토록 간절함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삶은 너무도 으스스하다. 연일 쏟아지는 매스컴의 보도는 우리를 더욱 움츠러들게 한다. 바로 며칠전 정치인 공무원 기업인등 여러 사람이 모인 자리에서 이런 저런 시국얘기 끝에 어느 누군가가 『모두들 제 정신이 아닌 것 같다』고 뱉자 좌중에 쓴웃음이 번졌다. 우리 모두 제 정신이 아니라는 것이다.
옛말에 『집안이 가난하면 어진 아내를 생각하고 나라가 어지러우면 어진 신하를 생각한다』고 했다. 부모봉양에 처자식 먹여살려야 할 가장이 한창 일할 나이에 부도니 명퇴니 하는 회오리바람에 휩쓸려 직장을 잃을 위기에 처해 있고 거기에다 물가는 날로 뛰고 있으니 집안살림을 알뜰하게 꾸려나갈 어진 주부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고, 국가 경제가 내일을 예측할 수 없을 정도로 침체의 늪에서 허우적거리고 있어 일마다 어려움으로 엉클어져 있으니 이를 슬기롭게 풀어줄 유능하고 성실한 신하, 곧 공무원이 아쉽지 않을 수 없다.
요 몇년 사이 부쩍 복지부동이라는 말이 신문 잡지에 오르내렸다. 복지는 땅위에 엎드린다는 뜻이고 부동은 움직이지 않는다는 뜻으로 납작 몸을 낮춰 꼼짝달싹하지 않는 공무원을 빗대 하는 말이라고 했다. 이 나라의 공무원이라면 배울만큼 배워 어려운 공채의 문을 통과한 인재들이고 국민도 마음놓고 국무를 맡겨놓은 터에 요지부동으로 일을 하지 않는다면 참으로 난감한 일이 아닐 수 없다. 한편으로 생각하면 언론에서도 격려와 채찍질로 하는 소리지 복지부동형이 그렇게 흔할 수는 없을 성 싶다. 다만 그런 사람일수록 「이 풍진 세상에 입 다물고 앉아만 있으면 본전치기는 한다」는 소신을 갖는 수가 있고 눈앞에 좋은 자리나 이득이 어른거리면 염치 불구하고 잽싸게 달라붙거나 나꿔채는 재간을 발휘하는 수가 있으니 미상불 경계하지 않을 수 없다. 참고로 조선 태종 원년에 제정한 공무원평정법(수령고과법)을 보면 좋은 점수를 주는 선은 공정성(공) 청렴성(염) 근면성(근) 신중성(근)이고 나쁜 점수를 주는 악의 기준은 탐욕성(탐) 포악성(폭) 나태성(태) 무능성(열)이었다.
이중에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 것은 아마도 청렴성이었던 것 같다. 그래서 유달리 청백리를 존중하고 유달리 청백리를 오래도록 기억했다. 다산 정약용 선생은 저서 「목민심서」에서 『청렴은 온갖 선의 원천(만선지원)이며 모든 덕의 뿌리(제덕지근)』라고 단정했다. 그리고 그는 『청렴은 천하의 큰 장사이다. 욕심이 큰 사람은 반드시 청렴하려 한다. 사람이 청렴하지 않은 것은 그 지혜가 짧기 때문이다』라고도 했다. 청렴이야말로 공직자 사회에서는 가장 수지맞는 장사라는 것이다. 왜냐하면 청렴으로 이름을 얻게 되면 상관의 신임이 두터워지고 주변 사람들의 존경을 한 몸에 받게 되니 수지맞는 일이 아닐 수 없다는 것이다. 거기에다 승진도 잘되고 좋은 자리에도 자주 앉게 되며 퇴직후에도 오래도록 일컬어지고 심지어 사후에는 「청백리 집안」으로 표창되어 자손에게 그 영예가 전해지게 되니 이문이 몇 갑절 남는 장사다. 더구나 늘 마음이 편하고 누구에게나 떳떳하게 대할 수 있으니 정신적 육체적 건강도 누릴 수 있다. 탐관오리는 그 더러운 냄새가 만년토록 풍겨 내려가게 되고(유취만년), 청백리는 그 꽃다운 향기가 백세토록 전해 내려가게 된다(유방백세).
조선왕조가 문약에 흐르면서도 500년이나 지탱할 수 있었던 것은 서리(아전)제도가 확립되어 있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공직자 한 사람 한 사람이 건전하고 건강하게 중심을 잡고 있다면 그 사회 그 국가의 앞날은 탄탄대로일 수 밖에 없다.
새 정부의 출범을 앞두고 기구개편이다 정원감축이다 하고 바람은 일고 있지만 우리 공무원 모두 「이 시대의 어진 신하」로서의 책무를 다한다면 경제난국이 빚어내는 한파인들 어찌 몰아내지 못하며 그 따스한 입김으로 98년의 새봄을 한결 화사하게 수놓지 못하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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