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00년 시공에 새긴 우리민족 표정/신라부터 현대까지 분노·환희의 삶 포착/지조불상 첫 공개도 「어허 이것이 웬짓이냐/ 이것이 웬짓들이란 말이냐/ 헐벗고 굶주리고 죽도록 일했는데/ 매맞고 굶주려도 말한마디 안했는데/ 앉지도 눕지도 못했는데/ 어허 이것이 웬짓이여/ 내가 무슨죄라 이리도 벌이 모질드냐/ 날아가는 기러기야/ 너는 내속을 알리라…」(김지하 시 「오적」 중)
억장이 무너지고 사지가 떨리는 분노, 때로는 세상이 모두 제것인양 속이 들썩들썩한 희열과 환희. 우리 조상들은 이런 세파에 부대끼며 사는 사람의 모습을, 혹은 구원자의 모습을 새김으로써 제 삶의 흔적을 남겼다.
가나화랑이 한국인의 얼굴을 주제로 마련한 전시에서는 바로 우리 조상들의 삶의 흔적과 만날 수 있다. 11일부터 24일까지 가나아트스페이스(027341020)에서 열리는 「한국인의 얼굴」전은 신라시대 6세기말에서 현재에 이르는 약 1500년의 시공에 나타나는 우리민족의 얼굴상을 보여준다. 고미술품 중 상당수는 일본과 미국에서 빌려온 것들이다.
6세기경 신라시대 금동여래입상, 고려시대 청동여래좌상 청동관음보살상, 조선시대 목조여래좌상 목조나한좌상 철제보련동자향로 등 불교미술로 태어난 수작도 선보인다. 특히 종이를 겹겹이 발라 형을 만들고 도금을 한 지조불상은 문헌에서 존재가 확인됐지만 공개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또 조선시대 관음지장보살상은 받침대 뒷면에 「정덕10년(1515년)/ 을해년 3월 조성한 관음지장보살/ 시주는 김순의 자손 김보/ 김귀천외 7명의 양주가 조성」이라는 명문이 있어 사료적 가치가 높다. 청동이나 금 외에 목재 석재 도자기 종이 등 여섯가지 재료로 만든 불상을 구분해 보는 재미가 각별하다.
현대 구상조각의 대표작가들의 작품에선 개성이 확연히 드러난다. 불교적 색채가 강렬한 자소상 연작으로 유명한 권진규, 직선과 원형을 적절히 배치한 독특한 조형미의 최종태, 반가사유상을 차용한 유영교, 완만한 선과 미묘한 굴곡이 묘미인 한진섭, 표면에 다양한 표정을 주는 김동우, 페미니즘적 시각이 돋보이는 한애규, 구원을 갈망하는 인간상의 홍순모 등 대표급 작가 7명이 출품했다. 오랜만의 구상조각전으로도 이 전시는 의미가 있다.<박은주 기자>박은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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