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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입력
1998.02.0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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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올해는 중국의 저우언라이(주은래) 탄생 백주년이 되는 해다. 이를 기념해 생전의 공적을 기리는 작업이 시작되고 있다. 중국공산당중앙서기국 기관지 「요망」은 최신호에서 중국 핵개발의 핵심이 주총리였다는 사실이 새로 밝혀졌다고 보도했다. ◆이제까지 막연히 마오쩌둥(모택동)의 결단으로 알려졌던 게 와전이라는 얘기다. 이 잡지에 따르면 한국전쟁이 한창이던 52년 중앙군사위에서 국방건설 5개년계획을 짤 때, 주총리는 강대국지위를 확보하자면 핵무기 개발이 필수적임을 인식하고 소련의 힘을 빌리기로 결심했다. ◆마침 그 이듬해 3월 스탈린이 죽어 장례식 사절로 모스크바에 가게 되자 그는 중국과학원 연구원들을 방문단에 넣어 데리고 갔다. 핵과학연구소 시찰과 우라늄관련기술 습득이 목표였다. 그러나 59년 중·소 국경충돌로 사이가 벌어지면서 소련은 원자력개발협력협정을 파기해 버렸다. ◆주총리는 독자개발노선을 결정했고, 그후 5년 만인 64년 핵실험에 마침내 성공했다. 유엔안보리에서 대만을 축출하고 상임이사국 지위를 차지하는 외교적 성공은 그 뒤의 일이지만, 중국은 원폭개발로 이때부터 이미 강대국 클럽의 멤버로서 국제정치무대에 세를 과시하기 시작했다. ◆우리는 물론 일본과 동남아 주변 각국이 경계하는 것은 핵무기와 함께 경제발전에 따라 급격히 현대화하고 있는 중국의 군사력이다. 어제부터 중국을 공식방문 중인 JP의 역할이 뭔지 알 수 없지만, 지난번 일본방문후 파문을 일으켰던 「어업협정 상호파기」 주장 같은 실수 만은 없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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