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며칠간 뉴욕을 달군 최대 화제는 다 해진 테디 베어(곰인형)가 대상이었다. 영국의 토니 블레어총리가 방미해 미국과의 대이라크 군사작전 공조를 논의하고 빌 클린턴 대통령의 섹스 스캔들이 재확산되는 굵직한 이슈에도 불구, 시민들의 관심은 온통 뉴욕 공공도서관 진열장에 전시된 헝겊 인형에 쏠렸다. 물론 예사 인형은 아니다. 영국의 유명한 아동 작가 A 밀른의 동화에 나오는 갈색 곰 「위니 더 푸」를 비롯해 돼지 「피글릿」, 호랑이 「티거」 등 다섯마리 동물 주인공의 원래 인형들이다. 1926년 밀른이 아들을 위해 지은 동화에 영감을 주었던 이 인형들은 책 판촉을 위해 미국에 건너온 뒤 작가로부터 선물받은 출판사측이 도서관에 기증함으로써 미국에 영구 정착했다. 곰돌이 「푸」는 책뿐 아니라 이후 월트 디즈니사 등이 만화 영화화해 세계의 어린이들이 가장 좋아하는 캐릭터중의 하나가 됐다.
그러나 블레어 총리의 방미를 앞두고 영국에서 「푸」 등의 귀향을 추진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며 격랑에 휩싸였다. 가이네스 던우디 하원의원(여·노동)은 대영박물관에 소장된 이집트 유물을 예로 들며 인형들을 원래의 고향에 데려오기 위해서라면 뉴욕시장과의 결투도 불사하겠다고 선언했다.
이 소식은 뉴욕을 발칵 뒤집어 놓았다. 루돌프 줄리아니 뉴욕시장은 바로 공공도서관을 찾아 인형 사수 결의를 다지며 『「푸」등은 미국에 귀화한 이민의 가장 훌륭한 본보기』라고 반박했다. 뉴욕출신의 니타 로위 하원의원은 의회에서 인형들을 빼앗아가려는 영국측의 기도를 규탄하는 결의안을 발의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에 발끈한 던우디 의원이 영국의회가 합당한 보복책을 검토해야 한다고 주장, 곰인형을 둘러싼 양측의 갈등이 자칫 양국간 외교문제로 비화될 조짐마저 보였다.
곤혹스럽게 된 것은 정상회담을 앞둔 양국 정상들이었다. 당초 한 대변인은 이라크사태를 비롯한 주요 현안이 산적해 곰인형 문제는 의제에 들지 못할 것이라고 기자들에게 답변했었다. 그러나 「사태의 심각성」을 파악한 양 정상은 회담중 시간을 할애해 이 문제를 논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먼저 마이크 매커리 백악관대변인이 나섰다. 그는 『대통령이 우리에게 언질을 준 바와 같이 「푸」를 잃는다는 것은 미국이 참을 수 없는 일』이라고 「경고」했다. 이어 영국측 대변인은 『「푸」와 그 친구들이 현재 있는 곳에 그대로 있도록 결정했다』며 「항복」했다. 드디어 사태는 일단락되고 「푸」등은 뉴욕에 남게 된 것이다. 두 우방간의 결속이 다시 공고해진 것은 물론이다. 한편의 동화를 연상케 하는 훈훈한 장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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