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YS의 침묵(대환란)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YS의 침묵(대환란)

입력
1998.02.07 00:00
0 0

◎11월2일 홍재형 전화 “각하,외환이 심각합니다”/YS “내임기중 IMF 가야되나”/외환통 홍 전 부총리 “IMF행” 동물적 직감/이튿날 윤진식 비서관 건의에 강 부총리 대노/윤 비서관 김광일 특보통해 “위기” 보고/11월7일 YS “얘기 들었다,잘해봐라”/‘IMF소풍’ 정도로 알았는데 클린턴 전화에… 11월2일 하오. 홍재형 전 경제부총리(현 한국야구위원회 총재)는 김영삼 대통령에게 전화를 걸었다. 『각하, 외환부문이 심각합니다. 위기상황입니다. 국제통화기금(IMF)지원을 요청해야 합니다』

 왜 현직도 아닌 홍 전 부총리는 김대통령에게 외환위기의 경보를 다급하게 보고했을까. 홍씨는 YS정권에서 경제관료로선 유일무이한 총아였다. YS정권의 첫 재무장관과 첫 재경원부총리를 지냈다. YS의 최대치적인 금융실명제를 극비리에 마련했다. 그의 별명은 「홍주사」, 성격은 「자물쇠」였다. 그만큼 세밀하고 입이 무거웠다. 그는 재무부시절 이른바 한데로 치부되던 외환분야만을 섭렵하며 70년대말과 80년대초 외환위기를 몸으로 막았던 국제금융통이다. 외환위기에 관한 한 동물적 직감이 있었다.

 11월3일 밤. 경제정책을 주무르던 빅(Big) 3인 강경식 부총리 김인호 청와대경제수석 이경식 한은총재가 시내 음식점에 모였다.

 이날은 외국인 주식투자한도가 확대된 첫날이었다. 기아사태에 이어 홍콩증시 폭락까지 겹치자 외국자본이 밀물처럼 빠져나갔다. 단기외채의 연장(롤 오버·Roll­over)도 급격히 막혔다. 은행마다 오버나이트물(하루짜리 해외 콜머니)을 막느라 밤을 새웠다. 사실상의 부도 직전상황이었다.

 그래서 한도확대 조치에 큰 기대를 걸었다. 그러나 예상은 크게 빗나갔다.

 이 자리엔 윤진식 청와대조세금융담당비서관(현 세무대학장)도 참석했다. 윤비서관은 『IMF 구제금융을 신청하는 수밖에 없다』고 건의했다. 순간 강부총리가 벌꺽 화를 냈다. 『말도 안되는 소리다. 앞으로 IMF에 대해서는 언급조차 하지 마라』며 얼굴이 벌겋게 달아 올랐다. 왜 윤비서관은 단도직입적으로 IMF 이야기를 꺼냈을까. 그리고 강부총리는 왜 대노했을까.

 외환위기 상황은 훨씬 오래 전부터 비밀 아닌 비밀이었다. 정부는 일년내내 외환유입대책을 내놓기에  바빴다. 사실 강부총리와 김수석도 이미 10월하순께 만나 외환문제를 심각하게 논의했다. 『이대로는 안되겠다. IMF를 생각해야 한다. 하지만 조건이 너무 심하다. 다른 방안을 찾아보자고 얘기한 것으로 안다』(청와대 B비서관 증언). 그러나 이정도의 우려는 이미 언론에서도 식상할 정도로 다루고 있었다. 정부의 반응은 「그게 아니다」는 것뿐이었다.

 11월5일 경제전문인 미국의 블룸버그통신이 「한국 금융위기 심각성과 IMF 자금지원 요청 가능성」을 보도했다. 다음날에는 세계 유수의 신문인 인터내셔널 헤럴드트리뷴과 아시안 월스트리트저널이 같은 내용으로 뒤를 이었다.

 정부는 국내 언론에 그랬듯이 사실무근이라며 펄쩍 뛰었다. 하지만 내심 무척 당황했다. 『위기감을 느꼈다』고 재경원 B국장은 털어놨다. 그래서 재경원과 한은이 각자 상황을 판단·분석해 청와대에서 논의키로 했다.

 11월7일 하오 청와대 경제수석실. 재경원 윤증현 금융정책실장과 한은 최연종 부총재가 가져온 보고서는 결론이 같았다. IMF 지원요청이었다. 정부문서에 나타나기는 처음이다. 잠시후 청와대 대통령 집무실. 김수석은 금융개혁법안을 중심으로 경제현안을 보고하면서 IMF 이야기를 꺼냈다. 최초의 공식보고였다. 최우선 순위는 아니었다. 다섯가지 보고 가운데 외환위기는 뒷부분이었다. 이날 주가는 최대 폭락을 기록했고 김대통령은 신한국당을 탈당했다. 대통령은 담담하게 말했다. 『다른 어떤 사람으로부터 이야기를 들었다. 잘해 봐라』

 주말인 11월8일과 9일. 강부총리와 김수석은 내내 머리를 맞댔다. 별다른 방안이 없었다. 10일 이들은 김대통령에게 보고했다. 『금융개혁법안과 IMF 지원요청을 동시에 추진해야 하겠습니다』 김대통령은 고개를 끄떡였다. 그러나 표정에 변화는 없었다. 이날 하오 9시30분께 김대통령은 이한은총재 집으로 직접 전화를 걸었다. 외환사정을 꼬치꼬치 물었다. 16일 미셸 캉드쉬 IMF총재가 당초 예정을 바꿔 극비방한했다. 그 자리에서 19일 IMF 지원요청 발표를 합의했다.

 재경원 B국장의 회고. 『강부총리팀의 기본 전략은 투 톱 시스템이었다. 금융개혁법안이 통과되고 금융시장안정대책을 발표하면, IMF가 한국의 개혁노력을 높이 평가하고 필요하다면 자금을 지원하겠다고 밝힌다. 그러면 외환위기를 극복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금융개혁법안은 무산됐고, 강부총리팀이 경질되면서 19일 금융시장안정대책 발표에서 IMF건은 빠졌다. 이틀 후인 21일 신임 임창렬 부총리가 IMF 자금지원 요청을 공식 발표했다. 임부총리는 최근 『취임한 날(19일) 받은 발표문에는 IMF문제는 없었다. 내가 고친 것은 환율변동폭을 15%에서 10%로 손질한 것 밖에 없다』고 말했다. 19일 발표내용에서 IMF건을 제외한 사람은 누구였을까. 대통령이었을까 아니면 강부총리였을까. 그리고 왜 그랬을까.

 다시 11월초. 홍 전 부총리는 대통령에게 전화한 후 고교(청주고) 후배이자 재무부에서 같이 근무했던 윤비서관에게 그 내용(IMF행)을 이야기했다. 빅3의 회동 자리에서 건의했지만 한마디로 묵살당했던 그로선 직속상관인 수석을 제치고 직접 대통령에게 보고할 수도 없었다. 다른 라인을 통하기로 했다. 김광일 정치담당특별보좌관을 찾았다. 김특보는 주위사람들에게 『디폴트(Default)가 무엇이냐. 우리 경제가 큰 일 났다는데, 경제팀이 잘하고 있는 것이냐』고 묻기도 했다. 김특보는 김대통령에게 이를 보고했다. 『자세한 것은 잘 모르겠습니다. 직접 불러 들어보십시오』 전에도 비슷한 이야기를 들었던 김대통령은 윤비서관을 불러 독대했다. 11월12일이었다.

 대통령에의 공식보고가 언제, 어떤 식이었느냐는 중요한 문제다. 강부총리와 김수석 주장. 『대통령에게 늦게 보고했다는 것을 문제삼고 있지만 그것은 본질을 모르는 이야기다. 핵심은 외환위기가 아니라 우리 경제의 구조적 모순이기 때문이다. 대통령이 며칠 일찍 보고받았다고 해서 달라졌을 것이냐』 하지만 그렇지 않다. 국정의 최고 책임자가 정식 채널을 통해 공식적으로 보고받았느냐, 아니냐는 본질적으로 다르다.  다음날인 13일 밤. 빅 3는 라마다르네상스호텔에서 무릎을 맞댔다. 보안을 지키기 위해 각자 저녁식사를 하고 모였다. 이 자리에서 「IMF로 갈 수 밖에 없다」는 정부 방침을 최종 확정했다. 다음날(14일) 아침 이들은 청와대에서 김대통령에게 「금융시장 안정대책」을 보고하면서 정식 재가를 받았다. 김대통령은 『(나의 임기중에) 꼭 가야만 하느냐』라며 말끝을 흐렸다.

 김대통령은 외환위기의 심각성을 어느 정도 알고 있었을까. 관계자들의 말을 종합해 결론부터 말하자면 김대통령은 외환위기 사실을 일찍부터 알고는 있었다. 하지만 그 의미나 심각성을 정확히 인식하지는 못했다.

 김대통령은 외환사정이 좋지않다는 사실을 여러 사람이나 채널을 통해 듣고 있었다. 최근 우후죽순처럼 불거져 나오는 『보고했다』는 주장이 그것이다. 홍 전 부총리도 『전화했을 당시 김대통령은 문제의 심각성을 알고 있는 것 같았고, IMF 결심도 한 것으로 느껴졌다』고 말한다.

 김수석도 이런 말을 했다. 『10월23일 홍콩증시 폭락이후 매일, 많을 때는 하루에 4번씩이나 (대통령에게) 보고했다. (대통령은) 다 알고 있었고, 대책을 논의했다』

 하지만 당시 외환보유고를 가지고 며칠이나 버틸 수 있으며, IMF 구제금융이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 등에 대해서는 잘 모르고 있었다. 11월14일 IMF 자금지원을 재가하면서 「내 임기중에…」라고 말한 것은 얼마나 절박한 상황이었나를 인식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청와대의 관계자는 『김대통령이 외환위기가 심각하다는 사실을 실감한 것은 11월28일 밤 빌 클린턴 미국 대통령의 전화를 받고 나서다』라고 밝혔다. 전화내용은 「한국이 외국 투자자들을 유치하기 위해서는 근본적인 수술이 필요하다. 경제부총리를 일본에 보내 돈을 빌리려 하지 말고 IMF 요구를 받아들여라」라는 것이었다.

 청와대 관계자 회고. 『김대통령은 특히 차남(현철) 구속이후 「학업」에 별로 뜻이 없는 것 같았다』 『김대통령이 「내가 경제를 뭘 아는가」 「장관들에게 일임해 놓았다」 「맡겨놓았더니 경제를 망쳐놨다」는 말을 여러 차례 했다는 이야기를 듣기도 했다』

 또 다른 관계자 증언. 『김대통령은 IMF행을 그렇게 심각하게 여기지는 않았다. 세계 중앙은행인 IMF에 가서 달러를 빌려오면 되는 것 정도로만 알고 있었다. 마치 「소풍가는 것」과 비슷하게 인식하고 있었다. IMF행의 엄청난 파장을 모르고 있었다』

◎금융안정대책은 쏟아졌지만…/작년에 무려 69건 발표/4∼5일에 한건씩 나온셈

 정부가 지난해 발표한 외환시장 안정대책은 주요한 것만 따져봐도 69건. 평균 4∼5일만에 한건씩 나온 셈이다. 그만큼 일년 내내 외환위기가 계속됐다. 하지만 효과는 기대에 훨씬 못미쳤다. 외환시장 개방·자유화라는 관점에서만 보면 획기적인 조치들이 적지 않았지만, 실물경제가 받쳐주지 못했다. 한보·기아사태 등의 부도도미노속에 대책들은 실종됐고 위기는 증폭됐다. 대외신인도도 급락했다. 외국투자자들은 한국을 떠났고, 빚 독촉은 갈수록 심해졌다.

□97년 금융시장 안정대책 일지

1/3  중기 무보증 CB 개방, 외국인투자전용 중소기업 무보 증제 개방

2/5  상업차관 도입 및 외화증권발행제도 개선

2/6  국제수지개선대책 

2/18 외화차입계획 신청현황

3/14 은행의 해외차입 규제폐지 및 기업해외차입 확대 3/2 6 대외신인도제고를 위한 대외홍보활동 강화계획

3/28 외국인주식투자한도 확대

4/3  우리나라 외채현황 및 평가

4/4  국제수지대책 차관회의

4/10 투신사의 외수증권 발행 확대추진

4/12 외국환 관리규정 개정

4/24 부실채권정리전담기구 설치 추진

5/6  외국증권사 국내지점 국제업무허용

5/7  금융기관 부실자산 등의 효율적처리에 관한 법률

5/13 기업의 직접금융조달기회 확충방안

5/19 97 채권시장개방 조기확대방안 

5/30 대통령담화관련 경제분야 후속대책 추진방안

6/6  투자신탁운용회사의 공사채형 투자신탁 조기허용

6/13 해외직접투자제도 개선

6/16 중앙은행제도와 금융감독체계 개편

6/27 주가지수 선물 옵션거래의 외국인투자한도 확대

7/9  외국인투자기업의 운전자금용 장기차관도입 허용

7/16 기아관련 금융시장안정대책

7/25 중앙은행 및 금융감독제도 개편 등을 위한 금융개혁법률  입법예고

7/25 기아그룹 부도유예에 따른 대책추진

8/5  기아그룹처리에 관한 정부입장

8/23 「재경원 기아대책 의혹」 보도관련 해명자료

8/26 금융시장안정 및 대외신인도제고대책

8/27 무역관련 자본자유화 폭 확대방안 시행

9/4  제일은행과 종금사에 대한 한은특융

9/11 산업은행 15억달러 외화채권발행

9/12 상업차관도입인가지침 개정

9/12 산업은행에 대한 현물출자 추진

9/17 SBS 와버그의 한국경제에 대한 평가

10/13 증권시장 선진화방안

10/16 외국환관리규정 개정

10/19 금융시장 안정대책

10/20 최근 금융시장 안정을 위한 정책간담회

10/21 IBCA의 한국 국가신용도 재확인

10/22 기아문제처리방안

10/25 대통령주재 확대 경제장관회의

10/29 금융시장안정대책

10/30 금융시장안정대책 후속조치 시행

10/31 부즈알렌보고서 발표

11/8  블룸버그 등 해외언론보도관련 반박자료

11/19 금융시장안정 종합대책

11/21 IMF유동성조절자금 지원요청

11/24 금융기관부실채권정리기금 설치 및 성업공사 개편

11/25 예금자보호제도강화(부총리 담화)

11/26 금융시장 안정 및 기관투자가의 주식매입기반 확충방안

11/27 무담보대출CP관련 대책

12/2  종금사 업무정지 및 경영개선방안

12/3  IMF협상 조인식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