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조직 개편의 필요성은 지난 수년동안 끊임없이 제기되었다. 따라서 중앙부처의 통폐합이 신정부 출범전에 마무리되어야 한다는 점에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물론 정부조직개편심의위원회가 마련한 개편안이 완벽하다고 볼 수는 없다. 짧은 기간에 모든 사람을 만족시킬 수 있는 개편안을 마련한다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에 반대의사도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조직개편을 서둘러야 할 시기라는 점을 감안, 국회통과에 거대야당인 한나라당도 협조를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 대통령제하에서 기획예산처와 중앙인사위원회를 국무총리실에 둘 것인가 아니면 대통령 산하에 둘 것인가는 정치적 선택의 문제이지 결코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논쟁의 핵심은 다른 곳에 있다. 내년 말까지 공무원 수를 5만명 정도 줄이겠다는 대통령직 인수위원회의 방침은 성급하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왜 3만명이나 15만명이 아닌 5만명인가.
정부개혁은 이제부터 지속적이고 적극적으로 추진되어야 하며 이를 추진하다 보면 감원 대상은 그 이상일 수도 있고 그 이하일 수도 있다.
노동시장의 유연성을 제도화해야 하는 정부로서는 고통 분담의 차원에서 공무원에게도 희생을 요구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그러나 기구 축소와 감원이 최근 세계 여러나라에서 추진되고 있는 정부개혁의 목적은 아니며, 이것이 정부개혁의 목적인 양 비쳐지면 정부개혁은 실패한다.
정부개혁이 필요한 이유는 무엇인가. 그것은 지난 200년간 조직을 지배했던 분업과 전문화에 기초한 관료제가 21세기 지식정보 사회의 조직원리로서는 부적합하다는 인식때문이다.
대량생산의 산업사회에서 합리적이고 효율적인 제도로서 순기능했던 관료제가 이제는 오히려 사회발전에 장애가 되고 있다. 항목별 예산회계제도는 유용과 독직을 방지하는 순기능을 하였으나 동시에 공금의 관리 자체를 불가능하게 하는 역기능을 낳았다.
엽관제를 방지하고자 도입했던 직업공무원제는 무능한 공무원의 해고를 불가능하게 했다. 관료제는 과정을 규제하고 투입요소를 통제하여 결과를 무시하는 행정을 낳았다. 필기시험 위주의 채용방식은 오히려 노동의 질을 저하시켰다. 연공서열에 따른 승진과 급여는 공무원의 나태와 무사안일을 초래하였다.
따라서 정부개혁은 규칙과 절차를 중시하던 관료주의 패러다임에서 성과지향적인 탈관료주의 패러다임으로의 전환을 의미한다. 정부가 비효율적인 것은 공무원 때문이 아니라 관료제의 경직성과 폐쇄성 때문이므로 정부개혁은 이 시스템을 바꾸는 것이어야 한다는 이야기이다.
시스템을 바꾸기 위해서는 업무와 조직을 재개념화하고 절차를 근본적으로 다시 생각하고, 혁신적으로 재설계하는 리엔지니어링이 필요하다. 시대에 맞지 않는 업무처리 절차와 규정을 찾아내어 불필요하다고 판단되는 것을 과감히 폐기해야 한다.
통제와 감독위주의 관료제 병폐를 해소하기 위해서는 국과계일선 담당자로 이어지는 조직을 폐지하고 팀제를 도입해야 한다. 고위 공직자에 대해 계약제를 도입하고, 능력과 업적에 따라 승진과 보수를 결정하도록 한다. 중앙정부든 지방자치단체든 정부의 역할을 다시 정의하여 업무를 민간에 과감히 이양해야 한다. 또 예산을 성취된 결과에 따라 배분하는 성과주의 예산제도를 도입해야 한다. 이러한 방향으로 개혁을 추진하면 그 과정에서 기구 축소와 감원은 불가피할 것이다.
95년의 자방선거이후에도 지방자치단체를 이러한 방향으로 개혁해야 한다는 요구가 많았다. 그러나 개혁은 거의 추진되지 않았으며 지방자치단체의 공무원은 지난 3년사이 오히려 증가했다. 그 이유는 무엇인가. 개혁의 방향과 철학에 대한 이해가 없었을 뿐만 아니라 지방자치단체가 이러한 개혁을 추진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받지 못했기 때문이다.
정부개혁의 목표는 공무원 숫자를 줄이는 것이 아니고 일하며 봉사하는 민주적 정부를 만드는 것이다. 따라서 지금 시급한 일은 감원이 아니라, 정부개혁이 부처별로, 지방자치단체별로 자율적으로 그리고 광범하게 추진될 수 있도록 관련 법규를 정비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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