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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는 벌써 새봄이라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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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는 벌써 새봄이라네

입력
1998.02.0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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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 돌담장사이 수줍게 고개내민 동백/곧 노랗게 물들 유채밭과 푸른바다의 조화/“고랑은 몰라마씀” 말로 해서는 모릅니다입춘도 지났다. 봄의 문턱을 넘어섰지만 날씨는 여전히 쌀쌀하다. 꽃샘추위도 기다리고 있다. 그러나 유난히 매서운 겨울을 보내서일까 봄을 기다리는 마음이 어느 해보다 간절하다. 한반도에서 가장 먼저 봄의 전령이 찾는 땅 제주. 제주에는 이맘때면 파릇파릇 움터오는 새봄의 기운이 가득 찬다. 10, 11일 북제주군 남읍 관광목장에서는 새봄맞이 정월 대보름 들불놓기 축제가 벌어진다. 파릇파릇 돋아나는 새싹을 위해 불을 놓는 마음, 새봄의 시작이다.

 나즈막한 검은 돌담장 사이로 수줍게 고개를 내민 동백꽃이 먼저 봄소식을 알린다. 음력 정월 대보름을 전후해 꽃망울을 맺기 시작한 제주의 동백꽃은 봄바람을 타고 서서히 북상해 3월 하순쯤 여수 오동도에서 만개한다. 대나무 매화 국화를 일컬어 세한삼우라고 하듯 꽃이 온통 자취를 감춰버린 추운 겨울에 오롯이 피어나는 동백을 빗대 세한지우라 한다.

 살을 에듯 매서운 바닷바람을 맞으며 의연하게 피어난 선홍색 동백꽃을 벗삼아 추사 김정희는 세한도를 구상했던 것일까. 헌종 6년(1840년) 김정희가 제주로 유배를 떠난 것은 그의 나이 55세, 인생의 황혼기에 접어든 무렵이었다. 9년이라는 짧지 않은 유배생활 동안 그는 「추사체」라는 독창적인 필법을 완성시켰고 「세한도」라는 걸작을 남겼다. 간결한 필선과 담백한 묵빛으로 세속에 흔들리지 않는 소나무의 절개를 표현한 세한도는 스승인 자신을 잊지 않은 제자 이상적의 신의를 상징한다. 남제주군 대정읍 안성리 옛 대정마을에 자리한 추사 적거지는 그가 유배생활을 했던 강도순의 초가를 강도순 증손의 고증에 따라 복원해 놓았다. 추사가 남긴 시와 서화의 탁본 64점과 농기구, 생활용품 142점을 전시하고 있다.

 제주의 꽃 유채는 2월 말부터 산야를 노랗게 물들이기 시작해 4월 중순이면 절정을 맞는다. 한라산 중턱에는 5월까지 잔설이 남아 있는데 검은 현무암 밭담에 둘러싸인 생기 넘치는 보리밭과 노란 유채꽃, 그리고 푸른 파도가 넘실대는 바다의 조화는 제주에서만 볼 수 있는 독특한 풍광이다. 이를 두고 녹담만설이라 하며 봄의 절경으로 꼽았다. 성산 일출봉 입구 오조리 일대를 비롯, 산방산 근처 안덕면 사계리, 대정읍 송악산의 낮은 오름, 용머리해안이 유채꽃 정경이 아름답기로 소문난 곳이다.

 성산 일출봉에서 고성리쪽으로 나와 신양 해수욕장에서 바닷가쪽으로 조금 더 들어가면 섭지코지가 있다. 최근 새롭게 명소로 떠오르고 있는 곳이다. 넓은 평원 너머 탁 트인  하늘 아래 펼쳐지는 푸른 바다를 조망할 수 있어 찾는 이들이 늘고 있다. 서귀포시 대포동 지삿개 주상절리는 섭지코지와 함께 아직 알려지지 않은 제주의 비경. 중문중학교 뒤편으로 난 길을 따라 대포동으로 들어가 지삿개라는 푯말을 지나 남쪽 농로를 따라난 자갈길을 내려가면 된다. 고불고불 좁은 올래(골목)를 따라 이어지는 전형적인 제주의 어촌풍경도 볼 만하다. 제주 사람이라면 「왕 봅서. 고랑은 몰라마씀(와서 보세요. 말로 해서는 모릅니다)」이라고 말할지도 모르겠다.

 제주도는 도로가 잘 닦여져 지도만 있다면 비경을 어렵지 않게 찾아다닐 수 있다. 1·2횡단로가 한라산을 넘어 섬의 남북을 이어주고 제주공항을 기점으로 방사선 모양으로 산업도로가 동서를 관통한다. 해안가를 한바퀴 감싸는 일주도로를 타면 제주의 알짜배기 비경을 모두 만날 수 있다.<제주=김미경 기자>

◎맛있는 집/맑게 끓인 갈치국 담백/옥돔·자리돔·꿩 별미

 바람 많고 돌도 많은 제주는 별미도 그에 못지 않다. 제주에 와서 갈치국 한번 못 먹어봤다면 안 온 것만 못하다. 귀한 손님의 아침밥상에 내놓았다는 갈치국은 제주연안에서 잡은 싱싱한 갈치를 재료로 한다. 비늘을 말끔히 훑어내고 큼직큼직하게 토막을 내서 파란 풋배추와 파, 마늘을 넣고 맑게 끓인다. 비린내가 날 것같지만 미역국처럼 담백하기만 하다. 부드럽고 고소한 갈치살을 발라내며 먹는 재미도 있다. 제주항에서 가까운 용담동 복집식당(064­22­5503)에서 제맛을 즐길 수 있다.

 봄과 함께 찾아오는 제주의 별미 옥돔도 빼놓기 어렵다. 음력 12월에서 3월은 옥돔이 제철을 맞는 때다. 제주사람들은 갈치나 고등어는 그냥 이름을 부르고 옥돔만 「생선」이라고 한다. 그만큼 명물로 여긴다. 제철에는 회 또는 물회로 먹거나 미역을 넣고 국을 끓여 먹기도 한다. 말려서 구워 먹는 맛도 삼삼하다. 옥돔물회는 껍질을 벗기고 잘게 썰어 식초에 버무려 뼈가 말랑말랑해지면 깨, 마늘과 된장이나 고추장에 비벼서 맑은 냉국을 부어먹는다.여기에 미나리, 풋고추, 마늘 등 야채를 곁들인다. 뭍에 나가 있는 제주사람들은 보리 수확이 시작되는 초여름이면 자리회가 먹고 싶어 고향 생각이 간절해진다고 한다. 자리는 「자리돔」의 준말로 봄부터 여름까지 제주연안에서 가장 많이 잡히는 어종. 제주사람들은 자리를 말 그대로 지져 먹고, 구워 먹고, 회를 쳐서 먹는다. 제주공항에서 가까운 물팡식당(064­48­3600)과 제주 KBS 뒤쪽의 장춘식당(064­42­8556)의 옥돔물회, 자리회, 자리물회가 맛있기로 소문나 있다. 모슬포항 근처 항구식당(064­94­3500)에서는 자리돔을 비롯 옥돔, 혹돔, 방어 등 싱싱한 회가 일품이다.

 가을이 깊어지면 제주의 부드러운 능선은 온통 은빛 억새물결로 출렁이고 중산간 들녘 여기저기에서는 청명한 꿩 울음소리가 울려퍼진다. 제주꿩은 옛부터 「고려꿩」이라고 해서 색깔이 곱기로 유명했다. 신천지미술관 근처 서원가든(064­99­7101)은 제주에서 꿩요리로 첫손 꼽히는 집. 꿩육회와 샤브샤브, 꿩만두 등 다양한 꿩요리를 내놓는다. 민박도 가능하다.<김미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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