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뒷면엔 매출액 뻥튀기·순이익 속이기/허위전표 작성·재고조작 등/엉터리 회계처리가 숨어있었다승천하는 용처럼 성장가도를 치닫다 급작스레 무너지고 있는 한국의 기업들. 한국기업은 왜 돌연히 추락하고 있는가. 대답은 기업의 부실투성이 회계처리에 있다. 기업들은 변칙적인 회계조작으로 매출액과 순이익을 부풀리고 부실한 재무상태를 교묘히 숨겨왔다. 한국기업의 몰락은 이미 회계장부에 예고돼 있었다.
중견 건설업체로 명성을 날리다 지난해 갑작스레 부도를 낸 A사. 세인들은 IMF 한파가 우량기업마저 휩쓸어 갔다고 안타까워 했지만 실상은 정반대였다. 매출액 부풀리기와 허위전표 작성, 순이익 속이기 등으로 이 회사 회계장부는 만신창이가 돼 있었다. 겉만 번지르르한 속빈 강정에 불과했던 것이다.
A사가 빈번히 사용한 방법은 매출액 부풀리기. 한번 매출목표를 잡으면 갖가지 방법을 동원, 장부상 매출액을 조작했다. 매출액을 과대포장해야 도급순위와 도급 한도를 높일 수 있기 때문이다. 이 회사 회계담당 직원 P씨. 『한번 아파트 분양을 하면 보통 총분양가의 절반을 그해 매출로 올려 버려요. 공사진척도 만큼만 매출에 올리는 게 원칙이지만 단기간에 매출액을 높이려는 의도지요. 이를 위해 공사에 들어간 비용인 매출원가를 조작합니다. 즉 쓰지도 않은 비용을 이미 쓴 것처럼 조작하는 거지요. 자재비와 인건비 등 현장공사비와 판매관리비 등을 터무니 없이 높여요. 납품 및 하도급업체와 결탁해 세금계산서를 조작하고 허위공사대금과 납품액을 장부에 올리는 거지요』
이러한 원가조작을 통해 순이익도 자유자재로 늘리고 줄였다. 인건비와 자재구입비 등을 낮춰 순이익을 늘리고 세금을 덜 내기 위해 순이익을 줄이기도 했다. 실제 적자가 나도 순이익은 매년 소폭 증가하도록 꾸미는 게 관례다. 재무제표상 적자가 나면 은행대출이 끊길 위험이 높기 때문. 매출과 순이익을 한번 부풀려 놓으니 다음해에는 조작액수가 더 늘어났다.
이 회사가 이런 방식으로 늘려 놓은 매출은 한해 1,000억원. 주식이 상장되던 94년에는 매출을 2,000억원 이상 과대계상 했다. 외형상 매출액의 3분의 1은 가짜였다. 상장시 1만5,000원대에 불과하던 주가는 매출 급성장으로 1년만에 7만원대로 올라섰다. 주가 띄우기로 상당한 재미를 본 A사는 사업다각화를 시도, 무리하게 계열사를 늘려갔다.
하지만 허위 회계처리로 속은 곪을 대로 곪아 있었다. 매출액을 늘리기 위해 마구 땅을 사들여 공사 시늉만 내고 분양을 했다. 그리고 분양총액의 최고 80%까지 매출금으로 미리 당겨놓았다. 분양이 잘 안되면 하도급업체나 부동산 중개업자에게 분양권을 강제로 떠넘긴 뒤 외상매출로 올렸다.
지난해 경기침체 여파로 아파트 분양실적이 급속도로 떨어지면서 이 회사의 추락이 시작됐다. 미분양 사실이 알려지면서 해약사태가 속출하고 자금이 대거 유출됐다. 신규분양이 되지 않자 매출액이 곤두박질쳤다. 이전의 아파트 분양실적은 이미 매출로 빠져 나갔기 때문에 매출감소를 메울 재간이 없었다. 결국 지난해 말 경영난을 견디지 못하고 부도를 내고 말았다.
30대 그룹 계열사로 역시 지난해 부도가 난 B사에서도 부실회계가 끊이지 않았다. B사가 썼던 대표적 회계처리 방법은 재고 조작. 품질불량으로 반품되거나 팔리지 않는 재고품을 정상재고로 올려 놓고 있지도 않은 재고를 있는 것으로 허위기재했다. 지난 4년간 B사가 엉터리로 조작해 올려 놓은 허위·무가치 재고자산은 줄잡아 2,000억원 규모. 총재고량도 93년 2,400억원에서 95년 3,600억원으로 급증했다. 팔리지도 않는 재고를 자산으로 올려 놓으니 실제는 적자인데 장부상엔 매년 30억∼40억원의 흑자가 났다. B사는 96년 재고자산 재평가 결과 3,000억원의 적자가 난 것으로 드러났다. 재고의 실제액수가 장부보다 2,000억원이상 적었다. B사는 지난해 결국 부도가 났다. 지속적인 판매실적 저하와 누적적자를 더이상 회계조작으로 메울 수 없었기 때문이다.
국내 전자업계에서 잘 나간다는 평을 받던 C사도 예외가 아니었다. 자산항목조작과 허위 내부거래로 부실을 감추어온 것이다. C사는 이익을 남기기 위해 제품을 만드는 데 드는 부품·재료비 등을 비용으로 처리하지 않고 재고자산에 포함시켰다. 회계의 기본원칙마저 어긴 어이없는 짓이었다. 이 회사가 이를 통해 3년간 조작한 액수는 200억원 정도. 비용처리할 돈이 외려 자산이 됐으므로 실제 순이익은 400억원이나 늘어난 셈이다. 이 회사는 이듬해 주식 상장을 통해 짭짤한 재미를 보았다.
장부와 실제의 차이를 메우기 위해 C사가 다음으로 쓴 변칙회계 방법은 계열사간 허위거래. 전자부품 생산업체인 K사를 인수한 C사는 실제 물건은 오가지 않는 장부상의 거래를 시작했다. C사가 제품을 K사에 팔고 K사는 이를 C사에 되팔아 상호 매출액을 늘렸다. 회사매출의 40%가 내부거래였다. 매출증가를 기초로 매년 증자를 통해 자금을 조달했다. 기업회계기준은 거의 지키지 않았지만 매년 회계감사에서는 「적정(정상)」판정을 받았다.
회계조작 액수가 지나치게 늘어나자 이번엔 중국, 홍콩 등지에 현지법인을 설립, 내부거래를 시작했다. 현지법인에 대한 허위 매출금이 1,000억원에 달했다. 현지법인은 부실덩어리로 변했지만 국내에서는 회계자료가 파악되지 않으므로 몇년을 더 버틸 수 있었다. 이러한 변칙회계로 C사는 8년 연속 흑자를 기록했다. 하지만 증시침체로 자금조달이 더이상 힘들어지면서 지난해 결국 부도가 나고 말았다. 실제로는 2,000억∼3,000억원에 달하는 자기자본이 모두 잠식된 상태였다.
대기업계열사로 지난해 부도가 난 D사는 외상매출액과 계열사 지원금을 변칙 처리해 온 경우. 거래처 부도로 못받게 된 140억원의 외상금을 결손처리하지 않고 수년간 정상채권으로 올려 놓았고 부실계열사에 빌려준 1,500억원도 정상적인 대여금으로 처리, 재무상태를 속였다. 계열사간 대여금 한도를 피하기 위해 600억원을 거래처에서 받을 외상매출어음으로 변조해 놓기도 했다.
92년 700억원에 불과하던 계열사 지원금이 지난해는 2,000억원을 훨씬 넘어섰다. 모기업인 D사 조차 버티기 힘들어졌지만 장부상으로는 멀쩡했다. 모기업으로부터 돈을 빌린 한 계열사는 제조비용 200억원을 고정자산으로 변칙처리하고 차입금도 영업상 외상금으로 돌려 놓았지만 자금난을 속이는 데는 한계가 있었다. 5년 연속적자를 버티지 못하고 이 계열사는 부도가 났고 무리하게 계열사를 지원해온 D사도 같이 쓰러졌다.<배성규 기자>배성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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