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고도 못본척/알고도 모른척/기밀유지가 기본자질 오너 중심의 기업 풍토에서 회사의 「돈줄」을 훤히 알고 있는 회계 담당자는 기업의 가신 그룹에 속한다. 회사 이익이 경영주의 사재나 비자금으로 흘러드는 일이 비일비재한 풍토에서 회계 장부는 기업의 「검은 구석」을 샅샅이 담은 비밀 문서나 다름없다. 웬만큼 신뢰하는 인사가 아니면 장부와 볼펜을 맡길 수 없다.
때문에 기업의 회계 담당자는, 오너의 친인척들이 주로 장악하는 재무·자금 부문과 함께 경영주의 최측근 인사로 분류된다. 회계 분야는 전문지식과 훈련 없는 오너의 친인척들이 다루기에는 아무래도 힘들다. 때문에 입사 이래로 경리부에서 잔뼈가 굵은 인물이 회계 전담맨으로 크는 경우가 많다.
회계 쪽은 스카우트나 인사이동도 거의 없다. 회계 장부를 열람한 사람을 최소화해야 하기 때문이다. 지난해 부도난 한보에는 그룹의 자금 업무와 회계 업무를 맡아보는 폐쇄 조직인 「재정본부」가 있었던 사실이 알려지기도 했다. 당시 재정본부장 김종국씨는 청문회에서 『나는 정태수 회장의 머슴』이라는 독특한 논리를 펴 화제가 되기도 했다.
매출 2,000억원대 한 중견기업의 회계 실무자 K씨. 『우리 회사의 회계장부를 보는 사람은 오너와 회계 담당 상무, 차장, 대리 딱 4명 뿐입니다. 위에서 「비밀을 지키라」고 따로 지시하지 않아도, 철저히 기밀을 지킵니다. 회사 내부 사람이 물어도 제대로 답하지 않죠. 밤샘작업도 많고 일이 힘들지만, 승진이 빠릅니다. 모시고 있는 경리담당 상무도 5년만에 이사대우에서 상무로 고속승진했습니다. 입사이래 죽 경리 쪽에만 계셨죠. 오너와도 가까운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회계 대행업체 Y사의 한 컨설턴트도 『편법·탈법 회계가 많은 건설업의 경우 오너 외에 한두명 정도만이 회계 내용을 알고 있다. 경리부장쯤 되면 오너와 상당히 가까운 사이인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말했다.
회계는 상명하복 풍토도 유난히 강한 부서다. 「시키는 대로 잘 따르는」 사람이 환영받기 마련이다. 규칙이나 원칙을 벗어난 일을 자주 해야 하기 때문이다. 사사건건 원리원칙을 따지거나 지나치게 강직한 사람은 회계일을 맡기 힘들다. K씨는 『윗사람 말을 잘 안 듣고 사사건건 부딪치던 상관이 최근 잘렸다』며 『회계 쪽은 상하 위계 구조가 무척 강하기 때문에 불만이 있어도 윗선에서 시키면 그대로 할 수 밖에 없는 분위기』라고 말했다.<김경화 기자>김경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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