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생지 사용 대중서적 늘어/가볍고 읽기에도 훨씬 편해 우리나라 책은 무겁다. 종이의 질도 너무 좋아서 페이지를 넘기다가 손을 벨 정도다. 외국책은 어지간한 학술서도 대부분 재생지를 사용한다. 가볍고 눈에도 부담을 덜 준다. 페이퍼백으로 된 소설류나 대중서는 신문용지에 가까운 질 낮은 종이를 쓰는 것이 보통이다.
국제통화기금(IMF)시대를 맞아 책도 거품을 빼야 한다는 지적이 많다. 특히 펄프를 거의 대부분 달러를 주고 수입하는 만큼 재생지 사용을 늘려 외화도 절약하고 책값도 낮추는 식으로 가야 한다는 얘기다.
홍원제지에 따르면 지난해 12월 중순 이후 환율상승으로 모조지의 경우 가격이 50∼60% 올랐다. 그나마 현금을 주지 않으면 구하기 어려울 정도로 물량도 달린다. 이런 상황에서 재생지 사용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인 셈이다.
7, 8년 전만해도 웬만한 대중서는 모두 재생지(서적지나 중질지)를 사용했으나 지금은 무슨 책이든 80g모조지나 100g모조지를 사용하는 실정이다. 스노화이트 같은 고급지를 본문용지로 사용하는 사례도 빈번해졌다. 베스트셀러들이 고급화를 선도하면서 출판계 전체에 불어닥친 바람이다.
일부 출판사들은 최근 이같은 추세를 감안, 원가절감 차원에서 재생지 사용을 적극 시도하고 있다. 푸른숲 출판사의 경우 베스트셀러에 오른 「영혼을 위한 닭고기 수프」의 본문용지를 고급모조지에서 서적지로 바꿔 정가를 6,000원에서 4,900원으로 18.3% 낮췄다. 박영사 법문사 등 70여개 출판사가 회원으로 가입한 한국학술도서출판협의회는 지난달 15일 책 본문용지로 모조지 이상의 고급지 사용을 자제하고 재생용지를 적극 사용하기로 결의했다.
강희일 회장(다산출판사 대표)은 그러나 『현재 제지업계의 생산시설이 모조지 중심으로 돼 있어 재생지를 대량 확보하기가 어렵다』며 『다른 분야에서도 재생지 사용을 늘려 재생지 대량공급 체계를 갖출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한샘 지학사 등 200여 학습참고서 출판사 모임인 학습자료협회도 최근 모조지는 서적지, 서적지는 중질지 등으로 본문용지 등급을 한 단계씩 낮추기로 했다.
민음사 박맹호 사장은 『잡지 소설 참고서 실용서적 등은 재생용지를 사용하는 쪽으로 가야 한다』고 말한다. 한국출판연구소 김경희 이사장(지식산업사 대표)도 『오래 보존할 가치가 없는 책은 재생지를 사용해야 한다』며 『다만 재생지 생산체계가 미비해 값이 그다지 낮지 않다는 것이 문제』라고 지적했다.
재생지 사용에 신중을 기해야 한다는 논리도 만만치 않다. 한길사 김언호 사장은 『무조건 재생지를 사용해 값을 낮추기보다는 제대로 된 책을 제대로 만들어 제 값 받고 파는 문화가 정착돼야 출판이 발전한다』고 주장한다.
북디자이너 정병규씨는 『유럽이나 미국 책에 쓰는 재생지는 재생지 특유의 자연스런 질감 등을 살리기 위해 고도의 기술을 들여 개발한 것』이라며 『이번 출판 위기를 다양한 재생지를 연구개발하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고 말했다. 재생지는 일회성 대중서로 국한하고 불필요한 책의 발행을 줄이는 방법 등으로 비용을 절감해야 한다는 여론이다.<이광일 기자>이광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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