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투명한 기업회계로 인한 피해는 그 회사에만 그치는 것이 아니다. 부실하게 작성된 재무제표를 믿고 기업에 투자하는 수 많은 투자자들에게도 큰 피해를 끼친다. 투자에 앞서 기업의 경영 충실도와 수익성을 가려낼 수 있는 기준이 부실하기 때문에 투자자들은 위험에 노출될 수밖에 없다. 우선 회계자료가 기업 경영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해 투자의 기본자료가 되는 기업신용도도 믿을 수 없는 경우가 많다. 한국신용평가 박상일 선임연구원은 『기업의 재무제표 등의 자료가 왜곡돼있는 경우가 많아 평가등급을 매기는 데 어려움이 많다』고 토로했다. 그는 『재무제표 계정 항목간의 상관관계, 업종별 동향 등을 꼼꼼히 살펴도 장부에서 원천적으로 누락된 부분은 찾아내기 힘들다』며 『때문에 외국과 비교할 때 우리나라에서는 높은 평가 등급을 받은 기업이 부도가 나는 경우가 많은 편』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지난 10년간 우리나라 3개 신용평가회사로 부터 투자 추천등급 중의 하나인 A등급을 받은 기업의 부도율이 8.26∼10.68%에 달했다. 회계 장부에 의거한 신용평가를 믿고 투자했던 투자자들은 고스란히 피해를 떠안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현행 상법에서 5% 이상 지분을 가진 주주들은 회계 장부 열람, 이사·감사의 해임 등의 주주권을 행사할 수 있도록 규정돼있지만, 아직까지는 형식적인 규정에 지나지 않는다. 지난해에는 한보에 부실대출한 제일은행, 부도가 난 기아그룹계열 (주)기산 등에 투자한 소액주주들이 주식 지분을 모아 경영진에게 책임을 묻는 등 실력행사에 나서기도 했다.
한 시중은행 여신담당 임원은 『재무제표에서 부실재고를 자산으로 포함시키거나 매출을 늘려잡는 등 회계 원칙에 따르지 않는 경우가 많아 대출 규모를 정하는 데 어려움이 많다』며 『이런 풍토에서 담보 없이 신용만으로 대출해달라는 기업의 요구는 들어줄 수 없는 일 아니냐』고 말했다.
부실 경영으로 기업이 쓰러져도 사주는 엄청난 재산을 거머쥐는 기현상도 불투명한 회계 관행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수년전 Y개발이 부도났을 때 회장 명의 부동산이 담보로 잡힌 회사 부동산 자산보다 많아 구설수에 오른 적도 있었다. 경영상의 수익 중 많은 몫이 사주 개인재산으로 빼돌려진 것이다.
재벌 기업의 경우에는 재무제표가 계열사들 간의 복잡한 상호지급보증 관계를 제대로 반영하지 못한다는 지적도 있다. 장부상으로는 자금사정이 양호하고 수익률이 높은 회사라 해도, 다른 부실 계열사에 큰 규모의 지급보증을 섰을 때는 투자 위험이 커진다. 회계 장부가 이런 복잡한 자금관계를 투명하게 밝히지 않는 한 투자자가 바른 정보를 얻을 수 있는 방법이 없는 것이다.<김경화 기자>김경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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