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품빼고 졸라매고 내핍 안간힘/암/부도·해고·임금삭감 속출/자살늘고 ‘생계형 범죄’도/60∼90% 할인 부도세일/해외유학생 귀국러시 IMF구제금융의 가장 큰 여파는 대량 실업. 기업의 연쇄부도와 대규모 감원한파로 1월중 하루평균 1,200여명이 직장을 잃고, 1,000명이상이 실업급여를 신청한 것으로 집계됐다. 직장에서 쫓겨난 사람들을 위로하고 재기의 발판을 마련해주기 위한 「IMF모임터」가 속속 생겨났다.
고통분담에 대한 공감대가 확산되면서 임금동결, 무교섭타결 등 새로운 노사교섭 관행이 자리잡아가고 있다. 근로자는 임금동결 또는 임금삭감을 감수하고, 사용자는 근로자의 고용을 보장함으로써 회사를 살리고 경제난을 극복하자는 움직임이다. 1월 한달동안 노사협력 결의대회를 한 사업장은 52곳으로 지난해(4곳)의 10배가 훨씬 넘었다. 그러나 한편에서는 사용자의 일방적인 임금삭감, 부당해고 등으로 노사관계가 악화하는 사업장도 속출하고 있다.
부도기업이 늘면서 경영권이 보장되는 화의신청이 급증했다. 96년 한해동안 9건에 불과했던 화의신청은 지난해 11∼12월에만 187개로 급증했고, 올들어서도 부도기업의 화의신청이 이어지고 있다.
기업의 연쇄도산에다 감원 금리폭등 주가급락 등으로 인해 신용카드 불량거래자와 은행채무 불이행자가 급증했다. 한국신용정보사가 집계한 은행채무불이행 건수는 1월10일 현재 409만건으로 1년사이 80만건 이상 늘었다. 신용카드 결제대금이나 은행대출금을 갚지 못해 법원의 면책결정을 구하는 「소비자 파산」신청도 급증, 96년 1건에 불과했던 파산신청이 지난해 12월 이후 12건이나 접수됐다.
자금난을 견디지 못한 중소기업 사장과 간부, 일자리를 잃은 가장의 자살이 잇따랐다. 지난달 29일에는 H운수 소속 상무 조모(60)씨가 부하직원들의 감원을 고민하다 결국 목을 매 숨졌다. 6개월된 아들의 분유값을 마련하기 위해 절도를 하는 「생계형」범죄는 주위를 안타깝게 하기도 했다.
수백만원의 벌금을 내기 어려워 자진해서 징역형을 선택하는 웃지못할 풍경도 나타났다. 현재 서울지법의 12개 단독재판부는 피고인에게 「벌금형을 원하느냐 집행유예를 원하느냐」고 물은 뒤 일주일에 3∼4건씩의 벌금형을 선고하고 있는 실정이다.
부도기업과 자금난에 봉착한 기업들은 현금 마련을 위해 60∼90%를 할인하는 「가격포기형 부도세일」을 실시했으며 세일매장에는 알뜰쇼핑 인파로 장사진을 이뤘다.
대형 종합병원과 대학병원들은 리스로 들여온 고가 의료기자재로 인해 엄청난 환차손을 입은데다 환자마저 급감, 최악의 경영난을 맞았고 수입의약품을 제때 조달하지 못해 진료마저 차질을 빚고 있다.
환율이 폭등하자 유학비 부담을 감당하지 못해 해외유학생들의 귀국이 러시를 이뤘다. 휴학계를 내고 군에 입대하려는 대학생들이 줄을 이었고 대학들은 휴학으로 인한 결원을 보충하기 위해 편입생을 대폭 늘렸다. 98학년도 대학입시에서는 공무원 진출과 취업이 용이한 학과가 새로운 대학 인기학과로 급부상, 지원생이 대거 몰리는 등 대학지원학과 판도마저 변화했다.
◎명/외제 소비품 수요 ‘뚝’/골프·스키회원권 등 폭락/중고 경승용차는 불티/금모으기운동 들불처럼
IMF 한파로 우리사회는 스스로 거품을 빼고 절약을 생활화하는 풍토를 뿌리내려가고 있다. 고가 소비제품과 사치품을 찾는 발길은 뚝 끊겨 수입승용차가 팔리지않아 아예 제3국으로 재수출되는가 하면 외제화장품과 수입의류 매장 역시 매출액이 급감했다.
새 자동차의 판매량도 크게 줄어 1월중 판매대수가 작년에 비해 3분의 1수준으로 떨어졌다. 중고자동차 시장에서는 경승용차가 같은 해에 출고된 중형차보다 비싼 값에 팔리고 있다. 아파트도 중대형보다는 소형을 선호하는 경향이 뚜렷해져 수도권 중대형아파트 전셋값이 큰 폭으로 떨어졌다.
골프장을 찾는 발길이 뜸해지면서 회원권 값도 절반이하로 폭락했다. 겨울철 주말이면 많은 인파로 붐볐던 스키장에는 빈 채로 다니는 리프트가 더 많아졌다. 해외여행객도 크게 줄어 지난해 12월에는 여행수지가 2년반만에 흑자로 돌아섰고, 국제선 항공기의 탑승률이 너무 떨어져 국내외 항공사의 서울노선 감축이 잇따르고 있다. 흥청거리던 연말연시 분위기는 아예 사라졌고, 직장인들의 귀가시간도 빨라졌다. 에너지 절약을 위한 가로등 격등제와 네온사인 자제로 밤거리마저 어두워졌다.
국내 유가가 3차례나 대폭 인상돼 자가용 이용자가 크게 줄었다. 서울 도심 주요도로의 작년 12월중 차량통행량은 전달에 비해 4.9%나 줄었고 주행속도는 빨라졌다. 지하철과 시내버스의 수송분담률이 70%선을 넘어섰다. 고속도로 통행량은 주말에는 24.8%, 평일에는 18.7% 줄었다.
금을 모아 나라빚을 갚자는 「신 국채보상운동」이 들불처럼 번져 국민들은 장롱 속에서 잠자던 금붙이를 아낌없이 내놓았다. 1일 현재 전국에서 217만명이 참여, 160톤(16억달러 상당)의 금을 모았다.<박정태·이진동 기자>박정태·이진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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