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과에 찾아와 보이지도 만져지지도 않는 증상을 호소하는 사람들에게 묻는 말이 하나 있다. 『그 괴로움을 남편 혹은 아내에게 얘기한 적이 있습니까』 그러나 놀랍게도 배우자에게 자신의 고민을 내비치지 않는다는 사람이 의외로 많다. 이유는 다양하다. 『못났다고 할까봐』, 『이상하게 볼까봐』, 『관심이 없어서』, 『부담을 줄까봐』…. 가장 가까운 사이의 마음이 한없이 멀게만 느껴진다. 한 이불 속에서 살을 맞대는 사람에게도 나를 드러낼 수 없다면 그 관계의 성질은 어떤 것일까.
부부관계는 세상에서 가장 친밀하고도 먼 관계의 전형으로 묘사돼 왔다. 「돌아서면 남」, 「칼로 물베기」라는 말은 이런 관계의 복합성을 한마디로 표현한 것이다. 그러나 부부관계의 이상으로 여겨지는 더 없이 친밀한 관계, 진정한 「칼로 물베기」의 관계는 단지 부부라는 사회적 법적 틀에 의해서만 만들어지는 것은 아니다.
「관계」의 의미를 타인과의 가깝고도 지속적인 감정적 유대라고 해석한다면, 그 관계는 끊임없는 고민과 교정에 의해 이뤄질 수 있음을 뜻한다. 관계는 가꾸지 않으면 내팽개쳐 둔 화초와 같이 흉해진다. 『결혼했는 데 왜 투자하느냐』는 우스갯소리는 가꾸지 않은 기형적 관계를 말하는 것이다.
친밀함은 서로에게 얼마만큼 민감하게 반응하는 성실성을 갖고 있는가, 어느 만큼 자유롭고 공개적으로 의사소통을 하는가에 달려 있다. 권위만을 주장할 때, 감정적 교류를 거부하거나 하지 못할 때, 상대를 책임질 만큼의 독립성을 갖지 못하고 요구만 할 때 의사소통의 통로는 막히게 된다.
그래서 옆에 그가 있는 데도 마음은 허전하고 공허해지며, 부부관계 속에서 죽어가는 부분들이 아우성치는 것이다. 이 아우성은 언젠가 외도로, 우울증으로, 아니면 관계의 파괴로 나타날 것이다. 관계라는 화초는 고민하며 가꿔야만 꽃이 필 수 있다.<가톨릭대의대 교수·부천성가병원 정신과장>가톨릭대의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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