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나비정객’ 몰아내고/의원수·조직 대폭 줄여야/국민의 ‘개혁압력’도 중요 최근에 몰아닥친 경제위기 때문에 우리 사회에는 지금 「구조조정」이라는 말이 하나의 유행어처럼 되었다. 실제로 구조조정은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전 영역에 걸쳐 우리가 이루어내야 할 숙제로 되어 있다. 김영삼 정부가 세계화를 외치고 해외여행을 장려하고 조기영어교육을 부추기고 드디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입을 결행하여 선진국이라는 달콤한 착각에 빠졌던 것도 따지고 보면, 폐쇄적 성장일변도의 길에서 벗어나 새로운 「세계적인」 도약을 맛보려 했던 결과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아서라, 그 정부는 세계화 개혁의 필요성은 알았으되 그 진정한 의미와 행동의 지침은 알지 못하고, 너무 섣부르게 설쳐대어 자신과 나라의 신세를 이 꼴로 만들고 만 것이다.
세계화란 초등학생이 영어 몇마디 씨부렁대고, 돈깨나 있지도 않은 사람들마저 해외로 물밀듯이 나가 추태를 부리고, 준비도 되지 않은 대학에 수십억원씩 들여 국제대학원이란 것을 만들어대고 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그들은 몰랐다. 이것들은 세계화의 오직 말초적인 곁가지에 불과하다. 더 중요한 것은 우리 사회와 정치와 경제와 의식의 구조를 뜯어 고치는 것이다.
정치적인 면에 국한해 보자면, 세계화 개혁이란 정경유착과 부패구조를 탈피하고 투명한 선거와 정책결정의 과정을 통해 국민에 대한 봉사로서의 정치체제를 확립하는 것을 의미한다. 즉 그것은 세계적인 수준에 맞는 민주성과 효율성을 겸비하는 정치제도와 관행의 확립을 의미한다.
그동안 한국의 정치가 많은 발전을 이루어온 것은 사실이다. 가장 명백한 증거는 여당의 프리미엄이 없어진 상태에서 깨끗하고 공정한 선거가 실시됨으로써 사상 초유의 여야간 정권교체를 이루었다는 사실에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의 정치는 대규모의 구조조정을 하지 않으면 안될 상황에 있다. 우선 정치인들의 면면을 볼때 여전히 한마디로 수준이하라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물론 그중에는 깨끗하거나 유능하거나 사명감이 투철한 사람들도 없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대다수는 권력을 좇아 부나비처럼 떠도는 정객들이요, 정치판에서 성공하여 이름깨나 날려보겠다는 허욕에 가득찬 사람들이다.
한국에서 정치가로 성공하기 위해서는 얼굴이 보통 사람의 열배쯤은 두꺼워서 거짓말을 밥먹듯이 하고 아무리 비난을 받아도 부끄러운 줄 몰라야 한다. 부끄러움을 아는 사람은 결코 성공할 수 없는 것이 한국 정치의 현실이다. 전문적인 지식이나 인생과 사회의 의미를 꿰뚫어 보는 혜안보다는 권력의 욕망과 개인 지도자에 대한 무조건적인 충성이 훨씬 더 출세에 도움이 되는 것이 한국 정계의 현실이다.
한마디로 한국의 정계는 물갈이를 해야 한다. 구태의 저질 정치가 종식되고 새로운 경륜과 지식의 정치가 그 자리를 대신해야 한다. 이를 위해 계속되는 선거를 통해 국회의원들을 갈아야 하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지금 여야간에 논의되고 있는 정치개혁이 강도높게 추진되어야 한다. 우선 국회의원과 지방의회 의원의 수가 대폭 줄어야 한다. 대표자의 수가 많은 것이 더 민주적인 것은 아니다. 오히려 진정한 대표의 기능을 회복하는 것이 민주주의에 더 중요하다. 양자를 지금의 3분의 2정도로 줄이고, 국회의원의 경우 적어도 반은 정당명부제를 이용한 비례대표제를 통해 선출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래야 경조사에 얼마나 찾아다니느냐에 따라 국회의원의 당락이 결정되는 지금의 모순이 타파되고 전국적인 의제에 몰두할 수 있는 역량있는 사람들이 보다 많이 의회에 진출할 수 있다. 아울러 과도한 중앙당 조직을 대폭 줄이는 방향으로 법규를 개정함으로써 비효율, 고비용의 문제를 해소해야 한다.
그러나 이러한 정치개혁은 개혁의 대상자가 또 개혁의 주체라는 점에서 근본적인 한계를 가지고 있다. 지금도 국회의원의 봉급만 따로 「세비」라고 부르고 비싼 순금 배지를 달고 다니는 상황에서 과연 국회의원들이 새로운 사고와 새로운 사명감으로 무장하기를 기대할 수 있겠는가? 언제나 개혁을 외치면서 언제나 「나만 빼고」인 사람들 이들을 교정하고 새로운 정치를 이룩하기 위해서는 국민 전부의 압력이 만만치 않아야 한다. 또 대통령의 힘이 여전히 강한 한국의 현실에서 김대중 당선자의 의지 또한 매우 중요하다. 그러나 벌써 국회의원 수의 감축은 중장기 과제로 돌리겠다는 등 차기 여권의 정책 방향이 나오고 있는 것을 보니 이번에도 큰 기대를 걸기는 틀렸나 보다. 그러나 그럴 수록 우리 납세자들은 세금이 아깝지 않도록 정치권에 더 큰 개혁의 압력을 가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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