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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적 광기 잠재워라/조성진 예술의전당 예술감독(아침을 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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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적 광기 잠재워라/조성진 예술의전당 예술감독(아침을 열며)

입력
1998.02.0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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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궁핍한 시대가 다시 오고 있다. 나라살림이 이렇다는 것을 자다깨듯 갑자기 알게된 이 때가 정권이 옮겨지는 시점이며 정부수립 반세기이며 나아가 세기가, 아니 밀레니엄이 바뀌는 시기이다. 이 엄청나게 중요한 때에 집집마다 생존을 걱정하지 않으면 안되게 되었다. 「경제청문회」를 해서 이렇게 된 원인과 「주범」을 가려내자는 말이 있지만 더 근본적인 원인에 대해서는 논란이 없는 것 같다. 왜 돈을 제대로 쓸 줄 몰랐던가? 그것은 바로 문화에 등한했기 때문이다. 『돈밖에 모르는 천한 것들!』이라고 내뱉는 외국영화도 있거니와 지금 외국에 창피한 것은 돈을 꾸는 그 자체보다 문화가 없었기에 생긴 우리의 모습을 보인다는 사실이다. 밥을 먹지 않으면 몸에 기별이 오니 죽지 못해서라도 우리는 하루 세끼 배를 채우지 않으면 안된다. 똑같이 정신의 양식도 하루하루의 밥처럼 거르지 않고 채워 넣어야 하는 것인데 우리는 배를 부지런히 채우는 동안 그것을 몰랐다. 허기가 심해지면 머리가 돌아버린다. 말하자면 우리는 정신의 영양실조로 미쳐버린 것이다. 최근 우리의 돈쓰는 행태는 실로 광기에 의한 것이 아닐 수 없었다.

 이번에 경제정책을 바꾸지 않으면 끝장이라고 누군가 말했거니와 이번에 정신의 영양실조를 치유하지 않으면 우리는 정말 끝장이다. 우리를 건강하게 할 정신의 양식이란 무엇인가? 몸이 병들었을 때 패스트 푸드와 진통제를 멀리해야 하듯이 정신에도 당장 달콤한 것을 피하고 서서히 피를 맑게하고 영양의  균형을 이루는 것을 먹어야 한다. 정신의 「현미쌀」은 바로 고전이다. 고전을 기반으로 하는 문화가 진정한 문화이다. 이 시점에서 「스산한 마음」에 위안이 된다고 또다시 알팍한 오락을 문화로 내세우면 안된다. 문화를 엔터테인멘트와 동일시 한 까닭에 저 징그러운 상업주의가 창궐하게 된 것이다. 우리는 이번 기회에 (어쩌면 절호의 기회에) 우리사회의 무게 중심을 만들 수 있는, 그리고 21세기의 한국인이 세계인과 어깨높이를 같이 할 거시적인 문화정책을 세우지 않으면 안된다. 올바른 문화에서 영양을 섭취하고 포만감을 얻을 때 비로소 우리는 광기에서 벗어날 수 있는 것이다. 없애려고 해보아도 안되는 향락산업, 고액과외, 청소년 범죄를 해결하는 길도 바로 여기에 있다. 「돈벌리는 일」이 아니라고 방치했던 여기에 궁핍한 시대가 닥칠 지금 역설적으로 더욱 투자해야만 하는 것이다.

 공연예술도 문화전반과 축을 같이 하여 단순히 어려운 시대를 모면하려고만 하지 말고 장기적인 계획을 세우고 철저한 자기반성을 해야 한다. 고전을 중심으로 하는 진지한 공연예술이 「반 대중적」인 것처럼 잘못 인식된 것은 깊이 있는 작품들이 올바른 방법으로 만들어져 전달되지 않았고 대중의 접근을 어렵게 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대중은 항상 입맛에 맞는 것만 찾게 된 것이다. 오락성이 적으면 관심을 돌리지 않는 것은 물론 대중의 속성이다. 그러나 소위 대중문화만이 대중을 「위하는」것으로 아는 사회의 앞날은 암담할 수 밖에 없다. 최근의 「고전의 대중화」작업이란 실은 「대중문화화」일 뿐이며 산을 깎아 평지를 만드는 것처럼 대부분 원래의 가치를 훼손하는 것에 불과하다. 가치있는 문화유산을 대중에게 올바르게 알리는 노력을 하지 않고 「대중화」라는 강박관념에서 벗어나지 못하면 문화는 영영 상업주의의 굴레를 벗어나지 못한다. 그렇게 되면 우리가 문화에 재정적 지원을 아끼지 않아야 하는 당위성도 의미를 잃게 된다.

 21세기의 공연예술은 외국에 뿌리를 둔 문화와 우리의 전통문화 양쪽에 「자주적」인 철학을 가지지 않으면 안된다. 문을 활짝 열되 받아들일 순서를 알아야 하며 우리 것을 자신있게 보이기 위해서는 새 것과의 「접목」에 급급하지 말고 좀더 갈고 닦아야 한다.(21세기를 몇백일을 앞둔 이 시점에서 우리의 할 일은 너무나 많으며 감상적인 복고주의는 당치도 않다.) 무엇보다  공연정책이 실무와 동떨어진, 말만 앞선 이론이 안되려면 부지런히 전문인력을 키워야 한다. 그런 제도가 부실하니 너도나도 구체적인 계획도 세우지 못한채 외국에서 엄청난 외화를 낭비하고 있는 것이다. 인력을 키우는 것과 동시에 그동안 숨어있던 인력을 발굴해야 한다. 해외에서 세계를 빛냈다는 사람들만 무조건 열광할 것이 아니라 젊고 능력있는 사람들이 빛을 볼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어야 한다. 앞으로의 공연은 종래의 한국 공연문화의 특성처럼 여겨지는 「행사성」 성격에서 벗어나 작가와 관객이 차분하게 정신적 대화를 나눌 수 있는 것이어야 한다.

 경제에 대한 책임을 문화전달자들도 나누어 져야한다. 금을 모으는 열기처럼 다급하게 문화에 눈을 돌리지 않는다면 우리의 살길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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