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2년 영 공수부대원들 시위대에 발포 14명 사망/평화협상 타결위해 블레어 총리 조사 천명72년 1월30일 북아일랜드 런던데리시 중심가. 수천명의 소수 가톨릭계 시민들이 영국정부의 재판없는 구금조치에 항의하는 시위를 벌이자 영국 공수대원들이 무차별 발포했다. 순식간에 거리는 아비규환으로 변했고, 뒷골목으로 도망치는 사람들까지 「조준사격」으로 쓰러졌다. 「피의 일요일」로 불려진 이 사건에서 14명의 시민들이 학살당했고 수많은 사람들이 다쳤다.
영국정부는 사건직후 법무장관을 위원장으로 진상조사에 나섰으나 모든 책임을 시위대에 뒤집어씌웠다. 500여명의 목격자 증언과 사망자 시신상처 등 객관적 증거를 무시한 채 『시위대가 폭탄과 무기를 지니고 있었다는 「강한 의심」이 든다』고 결론짓고 석달도 안돼 조사를 끝냈다. 80년 광주민주화운동 당시 시위대에 발포하고 폭도로 몰아세운 군사정권을 연상케 한다.
이 사건은 가톨릭계의 가슴에 다수 개신교도와 이를 지원하는 영국정부에 대한 증오의 씨앗을 뿌려 놓았다. 수많은 가톨릭계 젊은이들은 아일랜드공화군(IRA)에 자원, 총을 들었다. 30년 가까이 계속된 양측간 증오의 확대재생산은 지금까지 3,235명의 희생자를 낳았다.
사건 발생 26년만인 지난달 29일 영국의사당. 토니 블레어 총리는 「피의 일요일」에 대한 전면 재조사를 천명했다. 이는 5월 최종 타결을 목표로 하는 북아일랜드 평화협상을 가속화하기 위한 「신뢰구축조치」의 일환이다. 하지만 크게는 잘못된 과거사를 진실규명과 화해를 통해 바로잡는 「블레어식 해법」으로 봐야 한다. 그는 지난해 6월에도 영국이 150년전 아일랜드의 감자 대기근을 외면, 수백만명을 굶어죽게 한데 대해 잘못을 인정, 아일랜드인의 깊은 상처를 아물게 했다.
블레어 총리는 『우리는 진실을 바로 세워 이 고통스런 역사의 한 장을 영원히 마감해야 한다』고 밝혔다. 블레어의 외침에 북아일랜드 가톨릭계도 마음의 빗장을 열고있다. 영국정부는 법률가 새빌 경등 3명으로 재조사 위원회를 구성, 청문회를 열기로 했다.<박진용 기자>박진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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