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서?」 94년 11월 프랑스의 유력일간지 르몽드에 실린 한 기사의 제목이다. 보다 정확하게 풀이하자면 「그런데 그게 어쨌단 말이냐?(Et, Alors?)」라는 식의 못마땅한 시비조 표현이다.발단은 대중사진주간지 파리마치의 폭로성 보도였다. 이 잡지는 「대통령의 놀라운 이중생활」이라는 선정적 제목과 함께 미테랑이 파리 시내의 한 음식점에서 한 처녀와 함께 다정히 걸어나오는 사진을 실었다. 기사는 미테랑이 58세인 74년 사회당당수의 자격으로 지방을 방문했을 때 한 여인을 만나 순간적으로 사랑에 빠졌고 그 사이에 난 20세 된 딸을 그동안 엘리제궁에서 비밀리에 키워왔다는 내용이었다.
그러나 르몽드의 반응은 이랬다. 「대통령도 다른 프랑스인들과 마찬가지로 개인적 행복을 누릴 권리가 있다. 문제가 된다면 대통령의 사생활이 업무에 지장을 초래할 경우 뿐이다」. 공인의 사생활에 대한 프랑스인과 프랑스 언론의 시각을 한 마디로 말해준 것이다. 다른 언론들도 비슷한 논조였다.
이로부터 1년2개월 후인 96년 1월 미테랑의 장례식. 「뉴스의 모녀」는 미테랑의 미망인 다니엘 여사와 함께 나란히 공식석상에 참석해 눈물을 흘렸다. 클린턴 미대통령의 「허리 아래」이야기가 연일 세계의 톱뉴스다. 물론 「미테랑 스캔들」과 본질은 다소 다르다. 섹스는 불법이 아니지만 위증과 위증교사는 불법이다. 문화와 관습의 차이 또한 크다. 미국과 영국에서는 스캔들이 돼 사임까지 불러와도 프랑스와 이탈리아에서는 한갓 로맨스가 될 수 있다.
우리에게도 과거 세간에 알려진 「정인숙 사건」 등 고위 권력층의 「여성문제」가 있었음을 부인할 수 없다. 독재·권위정권과 유교적 문화 풍토에서 대부분 덮어졌을 뿐이다. 그러나 새 정권 하에서 고위공직자에 대한 인사청문회등 검증절차가 이뤄지면 혹시 이런 도덕성 스캔들이 불거져 나올 지도 모를 일이다. 그럴 경우 공인의 사생활은 어디까지 보호돼야 하며, 언론보도의 한계는 어디까지가 온당할까? 클린턴의 섹스스캔들을 보며 우리의 정서를 대입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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