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 외채협상이 성공적으로 타결됐다는 소식은 설연휴를 쓸쓸하게 보낸 국민의 마음을 안도하게 한 길보가 아닐 수 없다. 금리나 상환기간 등 우리측이 제시한 상환조건이 국제채권은행단에 대부분 그대로 받아들여져 우리 경제를 옥죄어 오던 외환위기에 숨통이 터졌기 때문이다.물론 이것으로 경제위기가 해소된 것은 아니다. 위기를 극복하고 선진경제로 재건하기 위해서는 오히려 이제부터가 시작이라는 각오를 새롭게 다지지 않으면 안된다.
외채협상결과는 금융위기의 화근인 단기채를 장기채로 바꿔 상환기간을 연장했을 뿐 빚을 갚은 것이 아니다. 채권은행들은 제때에 원리금을 받아낼 수 있을 것인가를 계속 주의 깊게 살필 것이고, 따라서 우리는 앞으로도 모든 수단을 동원해 우리의 상환능력을 그들에게 증명해 보여야 한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언제 제2의 금융위기가 닥치게 될지 모른다.
29일 정부 발표를 보면, 당초 12∼15%의 초고금리 장기국채로 전환할 것을 요구한 JP모건은행의 협상안이 거부되고, 평균 연리 8.1%의 정부지급보증 장기채로 바꾸자는 우리측안이 별다른 수정 없이 수용됐다. 특히 콜옵션 관철은 큰 소득으로 평가할 만하다. 이것으로 6개월 뒤에는 언제든지 금리가 싼 돈을 빌려 고금리의 장기채를 미리미리 갚아 나갈 수 있게 됐다.
협상결과는 당장 금융시장에 활기를 불어 넣었다. 발표 바로 다음날의 서울 외환시장은 대달러 환율이 뚝 떨어져 1,600원에 거래가 시작됐고, 주식시장도 종합주가지수가 크게 올라 550선을 넘은 장세로 출발했다.
1년 미만의 단기채 비중이 62%에서 30%대로 줄어들면서 대외신인도도 호전되고 무디스나 S&P 같은 국제신용평가기관들의 신용등급도 대폭 상향조정될 것이며, 이같은 여건에 따라 국제금융자본의 투자가 늘고 금리도 내려 수출기업이 돈 얻기가 훨씬 수월해질 것이다. 환율과 금리가 내리니 물가도 주춤할 것이고, 수출이 활발해지면서 국제경제사회의 평가가 더욱 좋아져, 그것이 다시 우리 시장에 대한 투자매력을 불러일으켜 경제회복을 촉진하는, 안정성장의 순환논리가 작동할 수 있는 발판이 마련된 셈이다.
다만 이 시점에서 우리가 경계해야 할 것은 한숨 돌렸다 해서 만심하면 안된다는 점이다. 외자를 유치하자면 먼저 재벌의 대혁신적 조치를 비롯한 경제구조 개편안을 법제화하는 일이 시급한 선결과제임은 두 말할 필요도 없다.
뉴욕협상의 교훈은 또 있다. 모두가 사심 없이 힘을 합치면 어떤 위기도 극복할 수 있다는 자신감과 공동체됨의 확인이 그것이다. 이번 협상이 성공적일 수 있었던 것은 김영삼 대통령정부와 김대중 대통령당선자측의 대표단은 물론 다수당으로서 뒤를 밀어 준 한나라당, 국내외 경제전문가들, 금과 달러모으기에 동참한 국민 모두가 합심한 결과임이 분명하다. 이를 지렛대 삼아 국민 대화합을 이끌어 낼 수만 있다면, 그것이야말로 IMF극복을 통해 우리가 성취할 수 있는 최상의 결실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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