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지 여자라는 이유로 감원 ‘0순위’/결혼사실 숨기는 ‘IMF처녀’ 등장도/자리보전해도 허드렛일로 떠밀려「IMF의 된서리는 여성의 몫?」
국제통화기금(IMF) 한파가 직장여성들을 내몰고 있다. 경영난에 처한 기업들이 감원 「0순위」로 여성 노동자들을 지목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여성민우회 한국여성단체연합 등 여성단체에 부당해고에 대한 상담이 부쩍 늘고 있다. 예전에는 하루에 한 건도 접수되지 않거나 임금차별이나 승진 불평 등에 대한 내용이 대부분이었는데 지난해 12월 이후로는 부당해고에 대한 상담만 하루 10∼20건씩 밀려들고 있다.
특히 기혼여성이나 사내커플 등 맞벌이를 하는 여성이 갑작스런 「철퇴」를 맞는 경우가 많다. 때문에 결혼한 사실을 회사에 감추거나 아예 결혼을 미루는 「IMF 처녀」라는 신조어까지 등장했다. 장기근속여성도 감원 우선대상이다. 근로기준법에 「산전·산후기간에는 해고할 수 없다」고 규정돼 있는데도, 출산휴가중인 여사원에게 대기발령이나 해고를 권고하는 일도 잦다.
최근 대규모 구조조정이 진행중인 D보험사에 다니는 A씨(27·여)는 330여명의 여사원과 함께 해고대상자로 발표됐다. 회사측에 해고대상자 선정기준을 물은 A씨는 황당하기 짝이 없는 대답을 들었다. 『1순위는 기혼여직원, 그 다음은 나이가 많고, 임금이 많은 순』이라는 것이었다.
L그룹 계열 의류회사의 한 직수입브랜드 영업부에서 일해온 B씨(30·여)도 최근 권고사직 통보를 받았다. 이 브랜드의 매출이 저조해서 아예 본부를 없애기로 했다는 것. B씨를 분노케 한 것은 함께 일하던 여성근로자 수십명이 모두 해고 통보를 받은 반면, 과장 등 남자직원은 다른 부서로 인사이동이 났기 때문이다. B씨는 『정작 이 브랜드의 기획안을 내고 일을 추진한 남자 직원에게는 아무 문책 없이 다른 업무를 주고 여사원만 해고한다는 것은 부당하다』고 말했다.
일자리를 보전한 직장여성도 괴롭기는 마찬가지다. 불가피한 감원으로 노동 강도가 높아지는 것은 감수할 수 있어도 단지 「여자라는 이유만으로」 업무와는 전혀 상관없는 허드렛일을 맡아야 하는 일이 허다하다.
1차 감원으로 고졸직 등 여사원 100여명을 해고한 I그룹에 「살아남은」 E주임(28·여)은 고졸직 여사원의 업무가 몽땅 떠맡겨져 예전보다 2배 이상 바쁜 하루를 보낸다. 주업무인 연구기획 뿐 아니라 손님이 왔을 때 커피접대, 복사, 상사 책상정리, 설거지 등이 사무실의 유일한 여사원인 E주임에게 몽땅 떨어졌다. 임원실 비서일까지 떨어져 사장실 전화까지 대신 받는다. 다른 여사원도 비슷한 처지이지만 말 한마디 할 수 없는 분위기다. E주임은 『싫은소리 했다가 당장 잘릴지 모르기 때문에 부당성을 제기할 수조차 없다. 지난 감원 때도 꼬박꼬박 바른 소리하던 여사원이 먼저 해고됐다』고 말했다.
한국여성민우회 최명숙 사무국장은 『우리 사회에서 고용평등이 제대로 실현된 적도 없지만, 그나마 성취해 온 직장내 평등도 완전히 후퇴할 위기상황』이라며 『여성에 대한 불공정하고 부당한 고용은 나 하나의 문제가 아니라 전체 여성의 권리와 직결된다는 의식을 갖고 대처해야 한다』고 말했다.<김경화 기자>김경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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