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가 싸준 보따리로 두손가득/고스톱에 밀린 윷놀이도 재등장IMF 한파는 설 풍속도마저 바꿔놨다. 빈손 귀성에 두둑한 귀경보따리가 바로 그것이다. 올해는 변변한 선물조차 준비하지 못하고 착잡한 심정으로 고향을 찾았던 자녀들이 부모님들이 꼼꼼하게 챙겨준 밑반찬 등이 바리바리 담긴 보따리를 양손에 들고 귀경했다. 뛰는 물가, 삭감된 월급, 실직위기 등으로 어려움에 처해있는 자녀들을 걱정하는 부모의 사랑으로 서울역과 터미널에 도착한 귀경객들의 보따리가 귀성때보다 훨씬 무거워진 것이다.
이번 설에는 고스톱에 밀려 자취를 감춰가던 윷놀이도 다시 등장했다. 고향인 원주에 다녀온 윤영규(회사원·28)씨는 『사촌 형이 실직하는 등 친척중에도 IMF 피해자들이 끼여 있어 고스톱판을 벌일 분위기가 아니었다』며 『윷놀이로 사촌끼리 친목을 다졌다』고 말했다. 고스톱판이 벌어져도 점당 5백∼1천원하는 내기는 찾아보기 힘들었고 점당 1백원이 주종이었다.
세뱃돈도 거품이 빠져 만원짜리 대신에 천원짜리가 대부분이었다. 아예 세뱃돈을 덕담으로 대신하는 경우도 많았다. 대기업 부장인 서재승(42)씨는 『지난해 설만해도 조카들에게 만원짜리로 세뱃돈을 쥐어줬는데 올해는 보너스도 못받는 등 「내 코가 석자」여서 1천∼5천원으로 하향조정했다』고 말했다.
차례상에도 IMF영향이 그대로 미쳤다. 턱없이 오른 물가 때문에 갈비찜과 조기 등을 찾아보기 어려웠고 반찬 가짓수도 줄었다. 광주에 사는 주부 김정혜(43)씨는 『보통 40만원선에서 차례상과 친척 20여명이 먹을 음식을 장만했는데 올해도 같은 비용으로 설상을 차리다보니 비싼 음식은 올릴 수 없었다』고 말했다.<이진동 기자>이진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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