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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명론’/김주언 전국부 차장(앞과 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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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명론’/김주언 전국부 차장(앞과 뒤)

입력
1998.01.2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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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가현실화」 「정치현안」 「재야인사」 …. 제5공화국 시절 언론에는 이렇게 애매모호한 표현들이 자주 등장했다. 군사독재권력이 정권홍보 또는 정권유지의 수단으로 보도지침을 통해 언론을 통제하면서 등장한 희한한 보도용어들이다.「물가현실화」는 「물가인상」 「정치현안」은 「직선제개헌요구」가 정확한 표현이다. 「재야인사」란 용어는 미국에 망명중이던 김대중씨를 일컫는 말이었다. 김씨는 당시 군사정권의 기피대상 1호로 이름은 물론, 사진도 보도되지 못했다.

10년의 세월이 흐른 뒤 대통령 자리에 오르게 된 김대중 당선자는 최근 국민과의 TV대화에서 권위주의의 상징인 「대통령각하」라는 호칭 대신 「대통령님」쯤으로 불러달라고 요구했다. 친근하면서도 민주적인 용어를 사용해달라는 부탁인 셈이다.

국제통화기금(IMF)의 구제금융이후 한국에서는 국가적인 구조조정이 진행되고 있다. 재벌개혁이 추진되고 노사정위원회가 구성돼 정리해고를 법제화하는 등 IMF의 요구에 부응하는 개혁이 이뤄지고 있다. 이 과정에서 노사정위원회 관계자들은 「재벌」을 「대기업집단」 「정리해고」는 「고용조정」으로 바꾸기로했다.

대기업을 매도하는 부정적인 용어인 「재벌」을 되도록이면 사용하지 말고 노동자들에게 섬뜩한 이미지를 풍기는 「정리해고」를 순화한 말로 바꾸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의견이다. 그렇지 않아도 보도매체에서는 요즘들어 재벌의 무차별 기업확장을 일컫는 용어인 「문어발 경영」이라는 알기 쉬운 말 대신 「선단식경영」이라는 알듯말듯한 용어를 사용하고 있다.

형식이 내용을 규제한다고 해서 형식이 내용보다 앞서거나 뒤져서는 안된다. 굳이 공자의 「정명론」을 들먹이지 않더라도 사물이나 사회현상을 적확하게 표현하는 용어는 하나밖에 없다.

정부는 명칭에 신경쓰기 보다는 형식과 내용이 조화되는 실속있는 구조조정대책을 내놓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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