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 회생가능성보다 경영·소유권지키기 초점/구조조정 걸림돌로”최근 국내 굴지의 한 로펌에서 기아그룹을 대리하여 지난해 9월22일 법원에 화의를 신청하며 수임료로 30여억원을 받은 것으로 알려져 물의를 빚었다. 대한변협 윤리위원회에서는 그 금액이 과다수임료에 해당하는지를 조사키로 하였다.
도대체 10조원이 넘는 빚을 짊어지고 있는 기아그룹이 부도라는 최악의 상황에서 진정 회사를 살리기 위해서라면 회사 갱생에 훨씬 유리한 법정관리를 신청할 일이지 왜 화의를 신청하였는가. 여기에 의문을 갖지 않을 수 없다.
법정관리(회사정리)의 경우 통상 화의에 비하여 채무변제의 유예기간이 2,3배 이상 긴 것이 보통이고 이자율은 2분의 1내지 4분의 1 수준에 불과하다. 뿐만아니라 모든 정리채권자 정리담보권자의 권리를 구속하고 법원이 직접 사전 또는 사후적으로 그 절차를 엄격하게 감독하고 있으므로 효력 및 집행에 있어서 화의보다 훨씬 강력하다. 당연히 회사를 갱생하는 데는 법정관리가 화의보다 백번 유리하다.
또 법정관리는 공익적 성격이 강하여 파산할 경우 지역경제 전체에 광범위하고 심각한 파급효과와 혼란을 불러올 우려가 있거나 또는 국가경제에 크게 기여하고 있는 제조업을 주업종으로 하는 대규모 주식회사를 주된 대상으로 하고 있다. 기아그룹이 이에 해당됨은 물론이다.
그러나 법정관리에서는 경영자는 물러나고 주식은 모두 무상소각되는 반면, 화의절차에서는 회사의 주주와 경영자는 주주권과 경영권을 상실하지 않은채 온존된다. 화의인가가 확정된 후에는 법원의 감독마저 전혀 받지 않는다. 또한 회사의 내부조직도 간섭을 받지 않는다.
이 때문에 김선홍 기아그룹 전회장은 자신의 경영권을 유지하기 위하여 회사의 회생가능성을 도외시하고 일단 화의를 시도한 것으로 보인다. 그는 정부와 채권은행이 이에 반대하자 노조를 동원하여 압력을 행사하려고까지 하였다.
그의 아집과 독선에 의하여 기아사태는 해결의 실마리를 찾지 못하고 몇개월이나 질질 끌게 되고, 국가 신인도는 크게 금이 가기 시작하였다. 오늘날의 국가위기를 초래한 결정적인 원인이 된 것이다. 김대중정부가 출범하면 경제청문회가 개최된다고 한다. 그는 당연히 청문회에 초대되어야 할 손님임에 틀림없다. 그의 책임은 철저히 규명되어야 한다.
요즘 IMF한파속에 부도난 기업의 화의신청이 줄을 잇고 있다. 화의가 도산한 기업의 구세주로 등장한 것이다. 20∼30%의 고금리를 견디다 못한 한계기업들이 일시 고금리를 피하고 도산을 모면하기 위해 고의적으로 화의를 신청하고 있다고 금융기관에서 의심할 만도 하다.
우리나라의 화의법은 파산법과 함께 62년 1월 제정되었는데 84년까지는 전혀 이용되지 않고 있다가 85년에 2건이 접수되어 모두 인가되었고 89년에는 2건이 일단 접수되었다가 모두 취하된 후 94년까지는 다시 한 건도 법원에 신청되지 아니하였다.
그러나 95년부터 사건수가 점차 증가하여 그 해에 13건, 96년에 9건, 97년에는 12월 한달동안에만 121건 등 총 322건에 이를 정도로 폭발적인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 금년에는 작년의 신청건수를 훨씬 능가할 것으로 보인다.
지금까지 이미 화의를 신청하였거나 곧 신청할 것으로 보이는 대기업에는 기아 진로 한라 쌍방울 뉴코아 태일정밀 청구 보성 나산 극동등이 포함되어 있다. 회사의 회생가능성을 제쳐두고 경영권과 소유권을 지키기 위해서 법정관리 대신 화의를 신청한 것이다.
화의는 본래 채무자와 채권자가 상호 교섭하고 합의하는 그 절차의 성격상 채권액과 채권자수가 적은 기업, 채권액이 많아도 채권자수가 적거나 동종 채권자여서 정리하기 쉬운 기업, 담보권자가 협력하는 기업등에 적합하다. 따라서 원칙적으로 중소기업의 도산에 적합한 절차라고 할 수 있다.
부도난 대기업의 경우는 화의가 성립할 가능성도 적거니와 설사 화의가 성립된 후에도 회생할 가능성이 별로 없다. 대기업 중에서 회생가능성이 있는 회사는 법정관리를 통해서 정상화할 것이나 가능성이 없으면 불가피하게 파산절차를 밟아야 할 것이다. 그래야만 산업의 구조조정이 원만히 이루어지고 금융기관의 부실화가 그나마 방지될 것이다.
더 이상 가망없는 대기업에 의한 화의제도의 남용이나 악용이 용납되어서는 안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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