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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해에 잠든 발해의 혼/뗏목탐험 4인 끝내 폭풍에 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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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해에 잠든 발해의 혼/뗏목탐험 4인 끝내 폭풍에 지다

입력
1998.01.2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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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3백년전 뱃길탐사 초인적투혼 25일 덧없이…/해양개척 모험·도전의 삶 일관/탈진후도 “해내겠다” 도움 거절「발해의 혼」을 좇아 1천3백년전 뱃길 탐사에 나섰던 「바다사나이」들이 사투 25일만에 끝내 그 뜨거운 젊음을 혹한의 동해바다에 묻었다.

「발해 뗏목탐사대」를 이끈 장철수(38·21세기바다연구소장) 대장은 경남 통영시 바닷가에서 태어나 바다에서 살다 짧은 생마저 바다에서 마감했다. 한국외국어대 재학때 독도연구회장을 맡았던 장대장은 88년 9월 독도근해에서 「뗏목시위」를 벌여 화제의 인물이 됐다. 장대장은 당시 「울릉도에서 육안으로 독도가 보인다」는 선조들의 기록을 증명해 보이기 위해서 시위를 했다. 일본 학자들은 『이 기록들이 사실과 다르다』고 강변하며 독도의 한국영유권을 부인하는 근거의 하나로 삼아왔다. 그러나 장대장은 사흘동안 울릉도와 독도사이를 뗏목으로 오간 끝에 마침내 육안관찰이 가능함을 입증했다.

장대장은 최근 「잊혀진 왕국」 발해가 만주대륙의 지배자였을 뿐 아니라 신라, 일본을 그 활동영역 안에 둔 해양대국이었음을 알게 되면서 발해의 해상교역로 탐사의 꿈을 불태워 왔다. 마침 올해는 발해건국 1천3백주년이 되는 해. 장대장은 사재를 털고 주변 중소기업가들의 도움을 받아 지난해 10월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에서 뗏목 「발해 1300」호 건조에 착수했다. 길이 12m, 너비 7m크기에 10.8m짜리 돛2개를 단 뗏목은 옛 문헌대로 건조됐다. 다만 위성위치확인장치(GPS), 노트북컴퓨터, 인터넷 접속 햄(HAM) 등 위치파악과 교신에 필요한 최소한의 장비만을 실었다.

제주 성산포 앞바다로까지 예정됐던 바닷길 2천5백여리의 대장정에는 푸른독도가꾸기운동에 함께 참여해 친해진 이덕영(49·경북 울릉군 북면 천부리)씨와 이용호(35·경남 창원시 사림동), 임현규(27·한국해양대 해운경영4·전남 구례군 토지면 금내리)씨 등이 함께 참여했다. 수산업을 하는 이덕영씨는 「발해 1300호」의 선장을, 그래픽디자이너 이용호씨는 사진촬영과 기록을, 무선기사자격증 소지자인 임현규씨는 통신을 각각 맡았다.

지난해 12월31일 장정에 오른 이들은 혹한과 폭풍으로 항로를 이탈, 파고 8∼10m의 파도와 사투를 벌이면서도 의지를 굽히지 않았다. 지상지원팀 이소희(38·여·서울 강동구 성내3동)씨는 이날 『대원들은 교신때마다 「죽어도 탐사를 마치겠다」는 말만을 반복했다』며 『심지어 지난 18일 포항해경소속 경비정과 조우했을 때는 완전히 탈진한 상태에서도 도움을 거절하는 등 초인적인 의지를 보였다』고 울먹였다. 대원들은 사고직전인 23일 하오 8시58분 해양대 무선국 이정필(26·전자통신공학 4)씨와 가진 마지막 교신에서도 『안심해도 된다. 걱정할 필요없다』고 자신감을 보였었다.

발해사를 전공한 부산 경성대 한규철 교수는 『젊은이들의 꿈이 좌절돼 안타깝지만 이들이 목표로 했던 발해항로탐사는 거의 달성한 것』이라며 『이들의 장거는 우리 정신사에 새롭게 인식되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고구려연구회 서길수 이사장도 『장한 젊은이들이 발해무역항로를 직접 확인함으로써 발해의 정통성을 보여줬다』며 『이들이야말로 우리 민족사의 자존심을 되찾아준 진정한 한국인』이라고 말했다.<전국제·정진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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