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우리나라에서 가장 유명한 인명은 김대중 대통령당선자일 것이고 가장 유명한 비인명은 국제통화기금(IMF)일 것이다. IMF는 초등학교 어린이들도 다 안다. 우는 아기도 IMF라면 울음을 뚝 그칠 판이다. 국제기구라면 우리에게는 6·25때 참전한 유엔(국제연합)이 전능인 줄 알았다. 이제 유엔의 시대는 가고 IMF의 시대가 등장했다. IMF가 지금 우리 경제의 난국에 참전을 한 것이다. 돈이 무력이다.그러나 유엔과는 달리 국민들은 IMF에 공포심을 갖고 있다. 그러면 IMF는 우리에게 모진 빚쟁이이기만 한 것인가.
지금 우리나라는 당장 불똥이 경제에 떨어져 따가워진 경제만 가지고 발을 동동거리느라고 그 불똥이 어디서 날아왔는지 따지려고 하지 않는다. 환란은 적기에 대처하지 못한 정부의 책임이라고 하더라도, 또 그 원인은 대기업들의 방만에 있고 일부 국민들의 방일도 일조를 했다고 하더라도, 더 치켜올라가면 하나의 원점에 귀착하게 된다. 우리 사회 전반의 부조리가 원죄다. 그 중에서도 특히 부정부패가 주범이다. 오늘의 경제파탄은 따지고 보면 부정부패에서 기인한 것이다. 그 직접적인 원인인 정경유착 같은 것도 부정부패의 전형이다.
난국을 풀자면 그 시원을 알아야 한다. 그리고 그 해결책도 거기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
최근 한 외국의 경제학자는 이런 말을 했다. 『한국이 경제 회생을 하려면 외국자본을 끌어들여와야 하는데 외국인투자가들은 안정되고 깨끗한 나라를 선호한다. 사업의 성패가 부정부패에 의해 좌우될 때 외국인들이 투자를 꺼린다.』 IMF가 요구하고 있는 것도 국내의 공명하고 깨끗한 질서다.
김영삼정권동안 성수대교가 무너지고 삼풍백화점이 주저앉고 한 것은 공연히 심심해서 그랬던 것이 아니다. 그 대붕괴의 굉음은 부정부패등 부조리에 대한 대경고였다. 그때 무엇이 안 무너지랴 싶었다. 결국 나라 전체가 무너지고 말았다. 그 참변은 부정부패로는 우리나라가 더 이상 도저히 견뎌낼 수 없는 막바지에 와 있다는 신호였다. 오늘의 경제위기는 그 신호무시의 처벌을 받는 것이다.
부정부패의 일소는 건국이래의 숙제였다. 남북통일만큼이나 해묵은 숙원이기도 하다. 그러나 혁명으로도 군사독재로도 문민정부로도 다스리지 못했다. 부정부패가 한때는 경제개발에 불가피한 유독의 촉매제였다고 하더라도 이제는 이 고질의 퇴치없이 나라가 회생할 수 없다. 그것을 어느 편작이, 어느 기파가 해낼 것인가. 바로 기회가 왔다. IMF체제다.
우리는 IMF사태를 비관적으로만 통탄하고 있을 일이 아니다. 겪어야 할 고통이 너무 큰 나머지 그 긍정적인 반사효과를 계산에 넣지 못하고 있다.
IMF로부터의 탈출은 경제 자체의 논리만으로는 안된다. 경제적구조조정 말고도 사회구조·의식구조를 조정해야 한다. 경제구조가 개혁되려면 다른 구조가 흔들리지 않을 수 없고 다른 구조를 흔들지 않고는 경제구조가 개혁되지 않는다.
부정부패의 일소 없이는 IMF사태를 이겨낼 수 없고 따라서 부정부패의 척결은 IMF체제에 기대를 걸어볼 수 있다. 부정부패는 이 난국의 원인이자 동시에 이 난국은 부정부패의 해법이기도 하다. 지금까지 어떤 정권도 해결할 수 없었던 국가적 난제가 풀릴 커다란 전기가 온 것이다.
큰 열병은 머리를 싸매게 하지만 앓고나면 다른 잡병이 다 죽는다고 한다. 태풍은 물 위의 배를 엎기도 하지만 바다 밑을 뒤집어 바다를 정화시킨다. IMF시대는 열병이요 태풍이다.
부정부패 등 부조리의 청산이 자력에 의한 광정이지 못하고 끝내는 타력에 의해 강요된 것은 수치스럽다. 이 수치를 어서 모면하기 위해서라도 청정한 나라로 개조하는 자강의 대열에 모두 동참해야 한다.
오늘 우리 국민의 고통은 목욕의 고통이다. IMF공황의 아픔은 우리 스스로를 자정하는 아픔이다. 이 기회를 십분 활용하여 청결한 나라가 될 수만 있다면 IMF시대는 우리 역사에 명예혁명의 시대가 될 것이다. 이런 혁명 없이는 IMF의 터널을 어떤 편법으로 빠져나올 수 있다고 하더라도 언젠가는 또 터널을 만나고야 만다. 우리는 지금 건국이래 50년만에 나라를 대청소할 기회를 맞고 있다. 그리고 그것은 마지막 기회일는지도 모른다.<본사 논설고문>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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