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협상 제대로 하려면…/김영만 미 한국상공회의소 회장(특별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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협상 제대로 하려면…/김영만 미 한국상공회의소 회장(특별기고)

입력
1998.01.2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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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금융의 중심인 뉴욕에서는 지금 국제 채권은행단과의 외채조정협상이 한창이다. 외환위기로부터의 탈출이냐, 국가부도사태냐의 중대한 갈림길이다. 신·구정부 가릴 것 없이 난국 돌파를 위한 협상에 온 힘을 모아야 할 때이다.비단 이번 외환협상단 뿐아니라 지난 연말 우리의 금융위기가 고조된 이후 많은 관계자들이 미국을 다녀가고 있다. 그들이 우리 위기에 대한 지원및 협력 요청이라는 소기의 성과를 거두고 있는 것으로 믿고 있다. 그러나 현지에서 느끼는 몇가지 아쉬움을 지적하고자 한다.

첫째로 우리는 사안에 관계없이 무턱대고 고위직만 상대하려 한다. 최소한 상대가 행정부의 장관이나 금융기관의 회장급은 돼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는 것 같다. 그러나 미국 사회는 소위 풀뿌리(Grass Root)문화의 구조를 갖고 있음을 이해해야 한다. 극히 예외적인 경우가 있기는 하지만 대부분의 의사결정은 하향식(Top Down)으로 이뤄지는 것이 아니고 상향식(Bottom Up)과 하향식이 조화를 이루며 진행된다. 특히 최근과 같이 상당히 실무적인 내용(국가신용등급, 융자에 적용되는 이자율, 융자기간 등의 금융조건)에 관한 사항은 상향식 접근이 아주 긴요하게 요구되는 대목이다.

때문에 금융기관에서 실제로 투자를 결정하는 실무담당 중역이나 신용평가 책임자들과 자리를 함께 하며 그들의 의견을 청취하고 요구사항을 알아서 그에 부응하는 전략을 세워야 한다. 회장들의 견해는 항상 외교적이며 의례적일 수 밖에 없다. 실행책임자들의 의견과 크게 차이나게 마련이다. 정확히 실상을 파악하고 실행방안을 찾기 위해서는 반드시 실무책임자를 만나야 한다.

둘째로 중요한 것은 인간관계를 1회성(Hit And Run)으로 보지 말고 어려운 때라도 서로의 신뢰와 우의를 쌓아가는 꾸준한 노력이 있어야 겠다. 금융위기가 있고 나서 해외에는 한국의 친구가 없다는 점을 절실히 느끼고 있다. 정부 금융계 그리고 업계가 다같이 반성해야 할 일이다. 미국 사회의 기초인 풀뿌리에 가깝게 접근해서 1회성이 아닌 꾸준한 노력을 했더라면 이런 어려운 상황에서 큰 도움을 얻을 수 있었을 것이다. 70년대말과 80년대 중반 우리 금융이 어려울 때 도움을 줬던 많은 한국담당 국제금융인들이 경제가 좋아진 뒤 덕을 보지 못했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이야기이다. 최소한 금융계에서는 한국인들이 의리가 없는 사람들로 인식되고 있음이 현실이다. 1회성이 아닌 지속적인 신뢰와 우의로 관계를 다져야 향후 협상의 제 조건을 유리하게 유도할 수 있을 것이다.

셋째로 미국의 다기화된 사회구조와 분산된 권력구조에 대한 이해를 하고 적절한 대응을 해야 하겠다. 행정부 의회 IMF 투자은행 상업금융기관 등 어느 누구 할 것 없이 우리 경제문제에 결정적인 영향력을 행사할 힘을 갖고 있다. 한국에 대한 금융지원에 부정적 시각을 지닌 의원이 많다는 것은 이미 알려진 사실로 앞으로 큰 부담이 될 것이 뻔하다. 여러 이해그룹을 잘 관리해서 우리가 도움을 얻자면 현지의 전문가를 활용해야 한다. 변호사 회계사는 물론이고 투자전문가, 홍보(PR)와 투자설명(IR)을 수행하는 대행사나 각종 로비스트등을 채용해서 과감히 이들을 믿고 일을 맡겨야 한다. 로비스트는 행정부나 의회 관계에서 큰 힘이 되고 있음을 재론할 여지가 없으며 금융기관과의 관계에서도 반드시 필요하다. 내부에 전문가집단을 거느린 미국의 대기업에서도 이들 「프로」를 채용하고 있는 실정이니 우리의 경우는 더 말할 나위가 없다. 그들이 간혹 실수를 하더라도 프로의 철저한 경험과 지식이 뒷받침된 직업의식을 기초로 해서 정직하고 성실하게 우리를 도울 것으로 믿어야 한다. 이렇게 해서 주도권을 빼앗긴 채 끌려가는 것이 아니라 상대에 한발 앞서 나가 협상을 주도할 수 있어야 한다.

끝으로 협상에서 이루려는 목표를 단번에 성취코자하는 경직된 논리(All Or Nothing)를 갖지 말아야 한다. 상대편의 의견을 성실히 수용하고 우리의 입장을 정확하고 단호하게 제시하면서 양측의 중간점에서 타결하려는 인내와 현명함이 필요하다. 타결된 뒤에도 계속적인 대화로 원래 목표와의 괴리를 없애도록 노력해야함은 물론이다.

경제위기를 대처해가는 지난 1개월여 동안 우리는 여러가지의 급격한 변화를 시도했다. 해외언론들은 우리의 개방노력과 시장경제원리를 위한 시도에 긍정적인 평가를 하고 있다. 인도네시아 태국과는 근본구조가 다르고 변화의 의지도 높다는 평가이다. 이러한 긍정적인 견해에 따라 투자가의 견해도 많이 개선되리라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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