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 일본은 우리에게 있어 「가깝고도 먼 나라」인가. 흔히 일의대수 관계로 비유되는 한일 양국이 최근 현해탄을 사이에 두고 심각한 외교적 마찰조짐을 보이고 있다. 까닭은 일본의 일방적인 선제공격 때문이다. 즉 일본이 23일 각의에서 한일 어업협정의 일방적 파기를 통고해 왔고, 이에 앞서 지난 20일엔 또 우리 어선 한척을 자신들이 일방적으로 선언한 직선기선에 따른 영해침범혐의로 나포했다. 지난해 6월 일본이 나포를 시작한 이래 7번째이자 금년들어서는 첫번째이다.이미 몇차례 지적한바와 같이 일본의 직선기선주장은 명백한 어업협정위반이자, 국제법 위반행위다. 또 상대방의 동의가 없는 일방적 선언의 준수강요는 약육강식의 정글에서나 통할 수 있는 반문명적 작태다. 일본정부는 조속히 어선과 어민들을 돌려보내야 한다.
김대중 대통령당선자와 김영삼 대통령이 일본의 일방적 협정 파기 움직임에 신중한 재검토를 촉구한 바로 그 시점에 일어난 어선나포행위는 그래서 심각성을 더해 주고 있다. 양국의 장래를 어둡게 하는 불행한 일이다. 국제적으로 꾸준히 정치적 영향력 확대를 추진해 오고 있는 경제대국 일본의 위상에 걸맞지 않는 소탐이라는 점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일본정부는 이번 어선나포가 특별한 「사전 의도」가 없는 우발적 사안이라고 극구 변명하고 있지만 우리는 그렇게 보지 않는다. 현직 대통령과 차기 대통령이 이 문제를 논의하고 있는 시점을 택한 이 어선나포행위를 어떻게 범상한 일로 치부할 수 있겠는가. 23일 어업협정의 일방적 파기에 앞서 명분축적을 위한 의도적 도발이란 점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우리는 일본정부가 기존의 선린관계에 찬물을 끼얹는 이같은 대결자세를 고집하는 이유를 잘 알지 못한다. 하지만 현재와 같은 대결자세는 결국 비등해지고 있는 우리의 대일 감정에 기름을 끼얹는 행위가 아닐 수 없다. 가뜩이나 IMF한파로 동파직전의 위기에 몰려 있는 고약한 시점을 택한 듯한 이 공세는 한국민에겐 자존심이 걸린 문제다. 일본은 친구의 곤경을 이용, 자신의 잇속을 채우려 하고 있다는 비난을 면키 어렵다.
특히 단기차관의 연장등 대한 금융지원을 약속하고 있는 일본정부가 하필 이 시점에 어업협정을 일방파기하려는지 그 저의가 의심스럽다. 일본은 협정을 파기해도 기존협정의 효력이 1년간 유효하기 때문에 이 기간에 협상을 하면 된다는 논리를 펴고 있다. 또 한국의 새정부와 교섭을 벌일 것이라고 한다. 정부가 바뀐다고 외교정책의 틀이 바뀔 것으로 생각했다면 큰 오산이다. 이미 김대중 당선자는 일본의 협정파기에 대해 우려의 뜻을 밝힌바 있다.
일본정부는 일방적 파기라는 고압적 자세를 버리고 협상을 통한 개정에 힘을 기울여야 한다. 선린구축은 오랜 시간이 소요되지만 허무는 일은 순간이다. 그 책임은 전적으로 일본에 있다는 점을 분명히 해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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