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통화기금(IMF)한파에 발가벗겨 내몰린 이래 우리사회에는 명암이 엇갈리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보통사람의 눈물겨운 희생과 헌신, 그 한편으로 「가진 자」와 「책임있는 자」의 외면이 그것이다. IMF체제 극복까지는 고통의 분담이 아니라 「가진 자」와 「책임있는 자」의 보다 큰 양보와 희생이 절실하다. 대다수 국민은 더 이상 졸라맬 허리가 없다. 노동부 추정에 따르면 올들어 하루평균 4,200여명이 생업의 터전에서 쫓겨났다. 지난해 하루 평균 170여명에 지나지 않던 실업급여 신청자도 올들어 1,700여명으로 10배나 뛰었다. 물가는 하루가 다르게 천정부지로 치솟아 시름을 더해준다. 그나마 「목숨」을 부지한 직장인도 자진해서 감봉, 고통을 감내하고 있다.대통령당선자의 고통분담 호소가 아니더라도 늘 그랬듯이 선 자리에서 말없이 땀흘려온 보통사람들은 외채상환을 위해 앞장서서 금모으기 대열에 동참한다. 하지만 「가진 자」와 「책임있는 자」의 대부분은 위기를 강건너 불구경하듯 한다. 작은 정부를 향한 구조조정 작업도 부처이기주의에 휘말려 결과가 난망이다. 공무원급여는 동결이란다. 의원정수의 축소, 국회 유급직원감축 등의 여론이 높지만 정치권은 고통분담 노력의 기미조차 보이지 않는다. 현재의 위기에 가장 큰 책임을 져야 하는 데도 말이다. 잘산다는 계층이 몰린 강남의 몇몇 구에서는 그나마 금모으기조차 외면하고 있다고 한다.
국난의 또 다른 주범인 재계 역시 변하지 않는다. 19일 발표한 현대와 LG그룹의 구조조정에는 고통분담의 구체적인 내용이 없다는 여론이다. 그룹총수의 사재출연 역시 기대로 끝나고 말았다. 그들은 기업활동을 하면서 세계에서 손꼽히는 거부의 대열에 들었지만 정작 기업은 국민의 돈인 은행빚으로 운영하지 않았는가. 이런 모든 것이 참으로 우리를 슬프게 한다. 위기일 수록 인격을 갖춘 지도자를 그리워하게 마련이다. 그런 지도자는 자기희생을 서슴지 않는다. 「가진 자」와 「책임있는 자」의 자기희생을 기다린다. 그래서 올해에는 시련 속에서도 우리를 행복하게 하는 일이 조금이나마 있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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