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그룹이 기업구조 조정차원에서 계열사인 문화일보 경영에서 철수키로 한 결정은 우리 언론의 해묵은 숙원인 재벌언론의 개혁이 시작되었음을 의미한다. 현대의 신선한 결정은 역시 신문을 소유하고 있는 삼성과 한화그룹 등에도 어떤 형태로든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국제통화기금(IMF)위기가 재벌에 의해 흐트러진 신문업계의 구조조정으로 이어지고 있는 셈이다.재벌이 언론시장에서 발을 빼기 시작한 것은 김대중 대통령 당선자의 재벌언론에 대한 부정적 시각 탓도 있지만 이들의 방만하고 무자비한 공격적 경영이 화를 자초했다고 보아야 한다. 재벌언론이 신문시장을 망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 것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재벌언론이 모기업의 권익옹호에 앞장서거나 재벌신화를 창조하고 재벌총수의 독선적 이데올로기 전파에 급급해 언론 본래의 사명을 망각한 것은 언론현장에서 숱하게 증명된 사실들이다. 이들이 재벌을 홍보하고 보호하는 것은 그 태생이 그러하니 묻지 않는다 해도 재벌로부터 제공받은 엄청난 자금으로 신문시장을 병들게 한 책임은 크다.
그동안 이들은 모기업의 광고 몰아주기, 재벌직원들의 신문봐주기, 제한없는 지급보증 등으로 조성한 돈을 과다한 무가지 및 경품살포, 무차별 덤핑 및 확장비 지급 등으로 신문시장의 유통질서를 어지럽혔다. 재벌들이 신문장사에 쏟아부은 돈은 재벌의 매출외형으로 볼 때 푼돈일지 모르지만 시장규모가 작은 신문업계의 입장에선 엄청난 액수이다. 재벌놀음에 의해 불붙은 신문시장의 과열경쟁은 「무한경쟁시대」라는 신조어를 탄생시키기도 했다.
재벌언론은 증면경쟁을 유도, 우리 실정에 맞지 않는 매일 48면 발행을 주도했다. 이같은 증면경쟁은 각언론사의 과잉설비 투자 등으로 이어져 경영을 악화시켰다. 이는 재벌의 자체 경영에도 악영향을 미쳐 모 그룹의 경우 소유신문의 부실로 부도위기에 처해 있기도 하다. 그런데도 재벌이 과당경쟁을 계속 주도해 온 것은 소유신문을 통해 정치 경제 사회적 영향력을 확보하려는 목적이 숨어 있기 때문이었다. 그동안 정부도 재벌의 언론소유의 폐단을 알고 있으면서도 재벌봐주기에 급급, 촉구차원에 그쳤다.
재벌의 언론소유는 이번 기회에 시정되어야 한다. 언론개혁은 이제 돌이킬 수 없는 대세이자 과제이다. 언론소유에 집착하고 있는 재벌은 모두 현대그룹이 문화일보 경영에서 철수하면서 「대기업의 언론소유 및 경영에 대한 국민의 시각이 긍정적이지 않다」고 밝힌 점을 무겁게 받아들여야 한다.
신문도 상품이며 신문사도 돈을 벌어 종업원들의 생계를 보장해야 하는 기업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언론기업과 재벌기업은 기본적으로 개념이 다른 독립적 영역이다. 언론이 정상적인 경영을 확보하고 이를 통해 정론을 보도하며 뉴스상품의 질을 높이기 위해서라도 재벌의 언론소유는 차제에 정리되어야 마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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