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조직 개편에 관한 공청회에 각 부처의 공무원과 산하단체의 준공무원들이 많이 참석했다는 보도는 적잖은 시민들의 마음을 무겁게 했을 것이다. 『텔레비전 중계를 보면 되는데도, 이렇게 많이 몰려든 것은 유휴 인력이 많음을 반증하는 것』이라는 어떤 시민의 비판은 날카롭다.자기 일자리를 지키려는 노력이야 자연스럽지만 근무시간에 많은 사람들이 본연의 일 대신 일자리 지키는 일에 나선 것은 어쩔 수 없이 마음에 씁쓸하게 닿는다. 작은 정부를 이루기가 이번에도 무척 어려우리라는 사실을 일깨워준다는 점에서, 실은 음산하기도 하다.
근년에 작은 정부의 필요성을 절감한 지도자가 드물었던 것은 아니지만, 어느 사회에서나 정부는 점점 커졌다. 대처나 레이건처럼 과감한 지도자들도 정부의 크기를 줄이지 못했다. 정부가 커지는 속도를 좀 줄였을 따름이다. 공무원의 수와 권한을 줄이는 일은 그렇게 힘들다.
작은 정부를 어렵게 하는 것은 일자리와 권한을 지키려는 공무원들의 거센 저항만이 아니다. 집권세력의 이해도 작은 정부를 어렵게 한다. 모든 지도자들은 강력한 지도력을 발휘하고 싶어하는데, 강력한 지도력은 힘과 충성심을 지닌 관료조직이 있어야 가능하다. 따라서 새로 권력을 잡은 지도자가 관료조직의 힘이나 충성심을 약화시킬 조치를 꺼리는 것은 당연하다. 게다가 그는 자신의 집권을 도운 추종세력에게 보상을 해주어야 한다. 그 일은 물론 정부의 일자리가 많아야 가능하다. 그래서 필요없는 자리들을 없애는 대신 그 자리들을 자기 사람들로 채우는 것이 개혁이라고 강변하고 싶은 유혹을 받게 된다. 물론 집권에 이르는 길이 길고 험난했던 지도자일수록 빚을 갚아야 할 사람이 많을 것이다. 이래저래, 한번 정권을 쥐고나면, 지도자는 정부의 조직과 권한을 줄일 의욕을 잃게 된다. 그것이 바로 김영삼대통령의 발목을 잡은 덫이다. 그리고 지금 김대중 당선자 앞에 놓인 덫들 가운데 가장 위험한 것이다.
그 덫을 피하려면, 원칙을 뚜렷이 하는 것이 긴요하다. 작은 정부를 만드는 것은 사회활동에서 정부의 몫을 줄이고 흔히 시장이라고 일컬어지는 민간부문의 몫을 늘리는 것이다. 그 일은 현실적으로는 규제 축소와 민영화를 뜻한다. 규제 축소와 민영화에 대한 계획이 선 뒤에야, 적어도 기본방침이 마련된 뒤에야, 관료기구의 축소가 제대로 시행될 수 있다. 지금 작은 정부를 만드는 일을 맡은 기구는 정부조직을 개편하는 일에 매달리고 있다. 그 일은 본질적으로 현재 정부가 지닌 기능과 권한을 주어진 조건으로 보고 효율을 높이려는 시도다. 따라서 그들은 일을 거꾸로 하는 것이다. 정부기구의 개편은 그 자체로는 정부의 기능과 권한은 물론 몸집도 줄이지 않는다. 다만 그것들을 재배치할 따름이다.
통념과는 달리 그런 재배치의 효과는 그리 크지 않으면서도 비용은 뜻밖으로 크다. 기구들이 합쳐지면 혼란이 필연적인데다가 그 기구들에서 일했던 사람들이 집단을 이루어 끊임없이 다투므로, 효율은 오히려 떨어지게 마련이다. 경제기획원과 재무부가 합쳐진 재정경제원에서 두 집단의 알력이 추문으로 번진 것은 대표적 예다.
무엇보다도, 그런 개편작업은 개혁이 이루어질 수 있는 시간을 허비한다. 개혁에 대한 시민들의 지지가 크고 개혁으로 손해를 볼 공무원들의 저항이 적은 집권 초기에 큰 운동량을 얻어야, 개혁은 성공할 수 있다. 예산기능을 총리실에 두어야 하느니, 청와대로 옮기느니 하는 일 따위로 소중한 시간을 쓰는 것은 참으로 안타깝다.
작은 정부를 그저 구호로 삼지 않고 실제로 이루려면, 김대중씨는 어느 사이엔가 우리 시야에서 사라진 그런 원칙을 또렷이 해야 한다. 그리고 각 부처에 요구해야 한다. 민간부문에 넘길 기능과 권한을 자세하게 밝히고 그런 이양에 따라 줄어들 인원의 명단을 내놓으라고. 만일 그 일이 현실적으로 어렵게 여겨진다면, 각 부처에 일정률의 인원감축을, 예컨대 10%의 감축을 요구해야 할 것이다. 더 늦기 전에 그렇게 과감한 조치를 해야 정부의 권한과 몸집을 조금이라도 줄일 수 있다. 그런 방안은 김대중씨의 정치적 자산을 덜 훼손하고 정부부문의 감원에 따른 혼란을 최소화한다는 이점도 지녔다.
만일 작은 정부를 만드는 일이 지금처럼 조직개편에 중점을 둔다면, 우리는 상당히 자신있게 예언할 수 있다. 이번의 시도도 이전의 시도들처럼 시늉만 내다가 끝나리라고. 지금 우리는 되살려야 한다. 김대중씨가 이끄는 세력보다 일을 추진할 수 있는 힘도, 정부조직의 개혁에 대한 열정도 훨씬 컸던 전두환정권도 끝내 작은 정부를 만드는 데 실패했다는 사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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