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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F시대의 ‘복지안전망’/김창엽 서울대 의대 교수(특별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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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F시대의 ‘복지안전망’/김창엽 서울대 의대 교수(특별기고)

입력
1998.01.2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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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복지 미흡한 현실속 의료비 지출은 큰 부담/회기적인 의보개혁 통해 국민건강 파탄 막아야실직과 소득감소의 암울한 분위기가 온 사회를 뒤덮고 있다. 이 결과는 단지 생활상의 고통과 좌절에만 머무르지 않는다. 어느나라 없이 높은 실업률은 범죄와 자살, 가족관계의 와해와 같은 사회적 병리현상을 낳기 때문이다. 경제위기 속에 있는 태국에서 정신질환자가 20%이상 증가하였다는 것은 그 단적인 예이다. 경제적 위기상황은 사회적, 정신적으로도 조만간 넓고 깊은 그늘을 드리울 것이 틀림없다.

그러나 실직과 소득삭감은 무엇보다 먼저 개인의 생명과 건강, 그리고 어린이의 건전한 성장에 크게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경기순환의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는 선진국들의 경험은 이러한 사실을 잘 보여준다.

우선 대부분 국가에서 실업자는 비실업자에 비하여 사망률이 훨씬 높다. 자동차사고로 인한 사망만 적을 뿐, 심장질환이나 자살, 암등으로 인한 사망이 훨씬 많다는 것이 정설이다. 예를 들어 핀란드에서 87년부터 92년 사이에 실직상태에 있던 사람을 4년 후에 조사하였더니, 남성 실직자는 취업자에 비해 2배 이상 사망자가 많았다.

이런 결과를 두고 그 원인을 실직으로 인한 스트레스나 개인의 심리적 좌절등으로 해석할 수 있다. 그러나 이 분야의 연구로 유명한 미국 존스 홉킨스대 브레너교수의 분석은 이런 상식수준의 상상을 일축한다. 그는 1930년대 중반부터 70년대 중반까지 영국의 경제상태와 사망률 변화를 관찰한 결과 실직이 명백하게 사망을 증가시킨다는 것과 함께, 4세 이하의 어린이 사망에 정부의 복지비 지출수준이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발견하였다. 이는 실직이나 경제성장 저하가 사망률을 높이는 것은 틀림없지만, 동시에 정부의 역할이 완충역할을 할 수 있다는 것을 시사하는 것이다.

실직과 소득감소는 두 말할 것도 없이 그 자체로 개인과 가족에게 신체적 정신적 피해를 준다. 그러나 선진국의 경험은 경제적 변동이 격심한 시기에 부정적 영향을 최소화시키는 것이 국가 혹은 정부의 몫, 구체적으로는 복지체계라는 것을 잘 보여준다. 이러한 의미에서 한 국가의 복지체계는 단순한 시혜의 차원을 넘어 개인과 가족, 나아가 사회전체의 건전성을 유지하는 안전망이라 할 수 있다.

고성장 저실업을 향유하던 시기에는 사회적 안전망이 그리 필요하지 않았다. 그 결과가 현재의 「개인이 스스로 알아서 하는」복지체계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전세계적으로 정부가 부담하는 보건비와 사회보장비가 가장 낮은 수준에 머물고 있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소득보장을 비롯한 사회복지가 미흡하기 때문에 실직과 해고가 곧 「죽음」으로 받아들여지는 작금의 사정을 고려하면 복지와 경제성장의 보완적 성격을 더 이상 회의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따라서 새 정부의 복지정책의 출발점은 더도 덜도 아닌 「사회안전망으로서의 복지」가 되어야 한다. 한편으로는 당장의 복지대책이 매우 중요하다. 자칫 개별안전망이 걷힌 상태에서 가계파탄과 그로 인한 사회적 통합성의 상실이라는 극단적인 시나리오를 의식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전반적인 소득보장에는 미흡하나마 고용안정기금 확대등의 조치가 마련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단기적인 가계파탄의 가장 큰 원인은 의료비와 같은 예측불가능하면서도 피할 수 없는 지출이다. 따라서 정부 차원에서 이에 대비하기 위한 최소한의 조치가 필요하다.

첫째, 무엇보다 전국민이 의료보장의 안전망 안에 남아있도록 해야한다. 실직으로 의료보험 자격을 잃고 있는 사람이 속출하는 지금, 종래의 논법으로 의료보험의 「내 몫」 주장을 하는 것은 곤란하다. 이를 위해서는 의료보험 재정의 통합, 특히 직장의료보험을 포함한 재정통합이 시급하게 이뤄져야 한다.

둘째, 질병 치료로 인한 가계파탄을 막을 수 있도록 의료보험에서 응급조치를 취해야 한다. 일정액 이상의 고액 본인부담이 발생하는 경우 초과분을 의료보험이 전액 부담하거나, 그것이 불가능하다면 장기저리로 융자를 받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재원은 직장의료보험의 적립금으로 충분히 마련할 수 있다.

셋째, 반드시 필요한 의료서비스를 당장 보험에 포함시켜야 한다. 예를 들어 예방접종이나 산전 진찰은 경제상황이 나쁘다고 연기할 수 있는 것이 아니면서도 현재는 본인부담으로 되어 있다. 필수적이면서도 예방효과가 있는 의료서비스는 가계와 보험재정을 동시에 보호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신속하게 공공 보건의료기관의 역할을 넓혀 취약계층이 손쉽게 이용할 수 있도록 하여야 한다. 개인과 가계의 파탄을 막아야 한다는 점에서 지금은 일종의 비상시기라 할 수 있다. 정부는 장단기적인 복지 안전망의 확보가 사회통합과 국민보호라는 점에서 머뭇거릴 수 없는 긴급과제임을 알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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