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의 외환위기 타결을 위한 국제적 협상과정에 우리 정부는 아무런 카드 없이 거의 빈 손 상태로 끌려가고 있다. 협상의 상대인 외국금융기관과 정부들은 어려움에 빠진 우리를 도와주기는커녕 상어의 눈을 번득이고 있다.아주 완곡하게 표현해서 섭섭하기 그지없다는 것이 우리 모두의 생각이다. 그러나 이 심사를 진정한 분발의 계기로 삼지 못한다면 우리에게 미래는 없다. 이럴 때일수록 정말 우리에게 무엇이 잘못되었던가를 넓은 안목으로 길게 보며 생각해 보아야 한다.
이번 위기는 좁게는 외환위기, 금융위기 등으로 인식되기도 하고 넓게는 한국형, 나아가 아시아형 발전모형의 종언으로 인식되기도 한다. 그러나 이제 위기의 본질에 대해 다른 시각에서 바라볼 때가 되었다. 이번 위기가 이처럼 급속도로 확산된 것에는 또 위기 국면의 수습과정에서 우리가 이해할 수 없을 정도로 국제사회의 반응과 협조가 싸늘한 것에는 단순한 이익추구 이상의 것이 작용했다고 봐야 한다.
이번 위기에서 우리가 반드시 인식해야 하는 것은 우리의 총체적 국가 이미지가 형편없다는 것이다. 이번 위기에 대한 외국의 반응중에 「내 그럴 줄 알았어」라는 고소해 하는 듯한 반응이 일반적이었던 것도, 「소가 되고 싶은 개구리」라는 표현이 나온 것도 결국 우리의 이미지가 그 정도밖에 안되는 상황인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모든 현상에 대해 그렇듯이 한 국가에 대해서도 우리는 어떤 이미지를 갖게 되고 대부분의 경우에는 그 이미지에 근거하여 그 국가와 관련된 제반사에 대해 판단하게 된다. 한국에 대한 외국인들의 국가 이미지가 대개 「오만한 졸부」 「말이 통하지 않는 고집불통들」 「돈밖에 모르는 족속」 「중국과 일본 근처 어디쯤에 있는 야만적 소수민족」등이라면 우리에 대한 그들의 평가, 우리가 만든 것에 대한 그들의 신뢰가 어떤 한계를 갖는 것인지는 말할 필요가 없다. 한국에 대한 국가 이미지는 부정적이다. 다만 여태 우리가 모르고 있었거나 알면서도 외면해 왔을 뿐이다.
그러면 이 위기를 어떻게 극복하고 국가 이미지를 개선하여 대내외적 신뢰를 회복할 수 있을 것인가. 국가 이미지는 우선적으로 경제, 정치, 사회 등 제영역에서의 가시적인 제도의 문제이다. 합리적이고 투명한 제도적 체제를 구축해야 한다. 우리가 추구해야 할 가치로서의 개방성도 합리성과 투명성의 맥락에서 제한적으로 이해되어야 한다.
제도적 체제보다 더 중요한 것은 우리 사회의 문화적 측면이다. 우리의 가치관, 의식, 관습, 규범 등이 모두 국가 이미지의 핵심적 항목들이다. 세련된 문화적 이미지를 구축해야 한다. 이러한 문화적 이미지는 우리 것에 대한 애정과 자부심과 함께 남의 것에 대한 사랑이 공존할 때 가능한 것이다.
합리적이고 투명한 제도와 세련된 문화로 구성된 국가 이미지는 우리 체제의 산물의 가치에 대한 평가와 신뢰에 직결되어 있다. 자동차 뿐만이 아니라 우리의 모든 것에 대한 평가는 기본적으로 국가 이미지에 의해 좌우된다.
잘못 알려진 면이 있다면 적절한 홍보 대책을 강구하여 해결하여야 한다. 만일 정말 잘못된 측면이 우리에게 실제로 있다면 국가개조의 작업을 해내야 한다. 다시 시작하는 기분으로, 이번에는 이미지에 신경쓰면서 말이다.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